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Oct 13. 2021

내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들

1일 1드로잉, 엄마 생각

#89일차


<내 어머니 이야기>는 4권으로 된 만화책이다. 알쓸신잡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책으로 꼽아서 유명해졌다. 절판되었다가 그 덕분에 다시 출판되었다. 작가 김은성은 자신의 어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2000년까지, 어머니의 여든 해 삶을 만화로 담았다.


1900년대 초 생활상,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 전쟁 후 남한 사회와 고도 성장기 등 한국의 근현대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통과하고 있었다. 역사 교과서로 배울 때는 연속성을 느끼지 못한 사건들이 어머니의 삶 속에서 물 흐르듯 연결되었다. 봉건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일제의 앞잡이를 한 마을 사람들 이야기, 광복 후 어수선한 남북한 상황에서 휴전선을 넘나들던 에피소드, 가족이 찢어져 이북에 남거나 남한으로 피난을 가게 된 사연 등 교과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단절된 틈이 상상력과 실제감으로 채워졌다. 책을 읽는 동안 시간여행자가 되어 그 당시로 돌아가 현장을 직접 보는 독서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한국판 그래픽 노블이다. 만화는 내내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되어있다. 인물의 특징은 헤어스타일과 눈동자 방향, 입모양으로 구분된다. 단순화된 기법으로 사랑과 이별, 가족애, 기구한 인생, 팔자와  같은 가슴 절절한 단어와 감정이 절제되어 표현되는데 가히 예술적이다. 어머니의 엄청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픽션과 비할 수 없는 리얼한 스토리가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만화책을 읽으며 일제 침략과 식민지 수탈, 내전과 반공, 냉전과 노동운동 등 질곡의 근현대 역사가 한 인간에게 어떠한 자국을 남기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한 여성의 삶에 묻어나는 한국 사회와 정치 상황을 지켜보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의 삶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았다. 박제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 우리 삶에 아로새겨지는 과정을 조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역사공부였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내 어머니 이야기>에서는 반대였다. 멀리서 보면 애달프고 불행한 사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니 어둠을 굴복시키는 희극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소녀들은 엄마가 되었다. 엄마들은 가족의 중심이 되어 사촌과 이웃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참혹한 상황도 우주와 같은 마음으로 감싸 안았다. 모성애를 신성화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풍요로운 대지의 넉넉함 같은 두터운 삶의 의지와 자애로운 마음, 뾰족한 모서리를 둥글게 품어 안는 힘이 만화책 속 엄마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엄마들은 또 다른 엄마들을 낳고 수많은 엄마들의 흔적이 대물림되어 지구를 보호하는 대기처럼 현재의 아들 딸들을 지탱해주는 모습상상해보았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하늘의 별이 된 수많은 어머니들을 떠올려본다. 이렇게 도움 받은 자의 책임감으로 고마움에 보답하겠다고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차갑게 순환하는 역사의 한 지점에서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의 물레를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