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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22. 2021

잘못 쓴 시간을 지울 수 있을까

1일 1드로잉, 지우개

#97일차


이 세상에 부처가 아니고서야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이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껴지거나 남보다 못한 사람 같았던 굴곡진 시간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점점 자라났던 자의식과 비관적인 생각을 "입시"라는 담요로 덮었었다. 대학에 들어가며 잠재된 열등감과 욕구불만,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일 감정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힘든 4년을 보냈다.


지난달 교사 연수가 있어 방문한 학교에서 연수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 학교 교사 중 한 명이 다가오며 알은체를 했다. 처음엔 나를 잘못 봤나 착각한 줄 알았는데 "나야, 000" 하며 자기 이름을 밝히는 순간 대학시절 가장 친했던 동기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는 후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교직에 발령받고 경제적 독립을 하며 인생을 다시 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시간에 알게 된 친구들을 의도적으로 피했고 대학 동기들과 연락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어둡고 불안했던 시간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꺼려졌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내가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모두의 인정을 받고 싶은 나쁜 버릇이 있었다. 존재가치를 증명받는 것에 끌려다녔던 나는 혼자 있을 땐 외롭고 사람들 속에서는 괴로웠다. 누군가와 친밀한 감정을 나누고 지지받고 싶은 마음을 나약하게 여겼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의 단점을 찾아내 그와 거리를 두는 모순된 행동을 보였다. 내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하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동료를 믿지 못했다.


태국으로 떠난 장기 배낭여행 중에도 가려져있던 콤플렉스가 드러났을 것이다. 동행했던 선배 언니는 여행이 끝날 무렵 정토회를 소개해주었다. 몇 년 동안 문경에 있는 정토회 수련원을 찾아가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에 참가했다. 내 몸안의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 다 뽑아내서 측정하는 사람처럼 4박 5일 내내 울기만 한 적도 있다. 그날도 우느라 세션 하나를 엉망으로 마무리하고 쉬는 시간에 혼자 툇마루에 앉아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법사님이 마당 저쪽에서 한 손은 법복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은 사과를 들어 베어 먹으며 어슬렁어슬렁 내 앞으로 걸어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울지 말라거나 네 마음 알고 있다는 끄덕임이나 등을 토닥여주거나 손수건을 건네줄 것을 예상했다. 법사님은 마치 어린아이가 "근데 너 왜 울어?" 하듯 정말 궁금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한입 크게 사과를 베어 맛있게 씹어먹으며 울고 있는 나를 구경하는 법사님이 의아했다. 꺽꺽대고 우느라 들썩이던 어깨의 흔들림이 점점 가라앉았다. 가쁜 숨이 잠잠해지며 눈물을 그치게 되었고 그제야 계절과 자연이 보였다. 한옥 마당은 선명한 햇빛이 한가득 쏟아지고 울창한 나무와 파란 하늘, 청량한 매미 울음소리가 여름을 여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문경을 찾지 않았다. 매일 아침 마음 챙김과 108배를 하며 일상 속에서 수행을 이어갔다. 불교대학에 등록해 불법을 배우고 봉사활동을 하며 오랫동안 두껍게 나를 뒤덮었던 껍데기가 조금씩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 두터운 발 뒤꿈치 각질이 작은 가루로 떨어져 나가듯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반들반들 보드라운 피부는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을 맨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 편해졌다. 나의 못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조우하며 마음이 들뜨고 선물 받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신호가 아닐까.       


우리는 쌀국수를 먹고 자리를 옮겨 카페에 갔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낯 친구에게서 이십 년 전의 익숙했던 얼굴이 보였다. 동기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소환될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오늘 그 친구를 통해 20대의 친구들이 40대가 될 때까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카페에서 "비혼, 결혼, 출산, 승진, 이혼, 부부갈등, 아이 엄마, 두 아들, 교통사고, 복직, 재혼, 병, 수술, 회복"이란 단어로 축약된 친구들의 인생이 쏟아졌다.  


어느 친구도 잘못 살아온 인생은 없었다. 탈 없는 삶을 사는 친구는 밝아서 좋다. 순조롭게 살지 못해 인생이 막히고 엉킨 친구는 삶의 깊이가 진한 커피 향처럼 베어 들어 좋다. 잘못 살아온 세월과 슬픔, 상처가 모여 오직 하나뿐인 나를 이루었다. 파도에 쓸려가 모든 것이 부서지고 새롭게 지어지는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패잔병처럼 콤플렉스와 화해하고 마음속 깊은 곳의 평화에 머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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