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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Oct 17. 2021

만능 계란 사용기

굽고, 삶고, 끓이고, 볶고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여덟 명의 대가족이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엄마와 아빠, 언니 세명, 그리고 나. 여덟 명이 사는 집에 음식은 당연히 풍족하지 않았다. 밥도 한 솥, 국도 한 냄비, 반찬도 한 통을 만들어놓아도 오래가지 않았다. 더구나 언니들과 나는 한창 잘 먹을 10대였으니까. 과자나 빵, 아이스크림도 한 번에 최소 네 개씩 사라졌다. 집의 음식은 자주 씨가 말랐다. 집에 언제나 과자가 쌓여있다는 외동 친구의  말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세상에는 그런 집도 있었구나.'


부족하던 음식을 보조해주던 건 '계란'이었다. 냉장고에는 계란 한 판이 불투명한 흰 플라스틱 통에 가득 들어있었다. 국거리가 없을 때는 계란국이, 반찬이 없을 때는 계란말이와 계란찜, 계란 프라이가 식탁을 채웠다. 주재료가 아니더라도 수제비, 칼국수, 라면과 같은 국물 맛을 내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서, 대가족이 3인 가족으로 되어도 여전히 계란은 필수다. 예전처럼 계란 한 판이 금세 동나지는 않지만 꾸준히 쓰인다. 주말이면 도도도- 걸어 다니는 조카들이 놀러 온다. 조카들은 아직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한다. 준비되어있는 반찬이 없을 때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계란 프라이나 스크램블 에그가 제격이다. 아빠가 안주가 없다고 대충 멸치에 술 한잔 하려고 때도 계란이 나온다. 아빠는 TV로 야구를 틀어놓고, 짭조름하게 소금 간을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기분 좋게 술을 마신다. 


혼자 사는 내 집에도 떨어지지 않는 식재료가 계란이다. 계란을 적게 살 때는 10~15구를 사고, 많이 살 때는 20구를 산다. 혼자 사는 것 치고는 계란을 많이 편이다. 사온 계란의 절반 정도는 반숙으로 삶아놓는다. 삶은 계란은 간단한 아침 식사로도 좋고, 다양한 음식의 토핑으로도 유용하다.


삶은 계란 사용하기


밀 프랩 도시락 위에도, 고구마 샐러드 위에도, 콩국수 위에도, 삶은 계란 한 개를 예쁘게 잘라 올렸다. 노른자와 흰자의 조화로운 색감은 어떤 음식이든 맛깔나 보이게 만든다. 


나머지 계란은 계란 프라이를 하거나 다른 요리의 부재료로 사용한다. 보통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기름에 튀기듯이 흰자가 바짝 구워지고, 노른자는 반숙인 상태의 계란 프라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은 프라이팬과 기름을 쓰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오목한 그릇에 계란을 깨고, 포크로 노른자에 구멍을 뚫어, 소금을 살짝 뿌린다. 그릇을 살짝 덮어서 전자레인지에 40초 정도 돌리면 담백한 반숙 계란 프라이가 완성된다. 

 

계란 프라이는 네 가지의 방법으로 나눠서 먹는다. 첫 번째는 고소하게 그냥 먹기. 두 번째는 케첩 뿌려 먹기. 세 번째는 밥 위에 노른자를 깨서, 김 싸 먹기. 네 번째는 간장계란밥 해 먹기. 계란 프라이 한 개로도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계란의 능력은 부재료일 때도 훌륭하다.


고구마 에그 슬럿

달콤한 고구마 에그 슬럿.

고구마를 으깨서, 견과류, 우유와 함께 섞었다. 가운데에 약간 홈을 만들어 계란을 깨서 넣고,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려서 간을 했다. 체다 치즈를 잘게 잘라서 계란 주변에 테두리처럼 올리고, 랩을 씌워서 전자레인지에 3~4분 돌렸다. 달콤한 고구마와 고소한 계란에 짭짤한 치즈까지 맛없을 수 없는 음식이다


카레 계란덮밥

부드러운 카레 계란덮밥.

기름에 양파를 볶고, 잘 익으면 우유와 카레 한 숟가락, 계란 2개 정도를 넣어서 짧게 더 볶았다. 어차피 맛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매운 카레를 써도 괜찮았다. 너무 뻑뻑할 때는 우유를 조금 더 넣었다. 우유가 없을 때는 아몬드 브리즈나 두유를 썼다. 넓은 그릇에 밥과 함께 담아 먹으면 아주 간단하지만 확실하게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만둣국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여 국물 맛을 내주는 것도 계란이다. 계란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뽀얗기만 한 국물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이러니 계란 20구가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엄마의 냉장고에 왜 그렇게 항상 계란이 수북하게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여덟 식구의 계란이었으니, 오죽 빨리 사라졌을까. 


계란이 없었으면, 내 식탁이 많이 허전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새 계란 값이 많이 올랐다. 종종 음식을 사 먹던 갈비찜 가게에서는 더 이상 계란찜을 서비스로 주지 않는다. 육회집에서 육회는 리필해줘도 계란은 리필해주지 않는다. 계란의 위상이 커졌다. 정말 내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



계란이 또 떨어져 간다. 꽉 차 있던 계란 선반이 썰렁하다. 하지만 비싸도 끊을 수 없다. 계란은 만능이면서, 무엇보다 맛있으니까. 내일 다시 계란을 가득 넣어놓아야겠다. 내 지갑이 썰렁해져도 식탁은 썰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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