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HSP의 성장일기
"언니는 정말 너무 예민해!" 여동생이 내게 하던 말이다. 사실 좀 더 거칠게 표현했던 것 같긴 하다. '성격이 지랄 맞다'든가, '같은 방을 도저히 쓸 수 없다'든가. 그것은 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었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무던한 여동생의 행동들이 버거웠다. 때로는 여동생의 숨소리마저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조차 자기 자신을 예민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지랄 맞은 예민함은 극성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사용될 정도였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땐 내가 조금 겉돈다고 느꼈다. 나만 지나치게 예민한 것 같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나 혼자 조금 튄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학급에서도 나처럼 소리나 빛, 사람들의 표정과 미세한 분위기 변화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는 학생은 없었다. 선생님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원하는 대답을 적절한 순간에 발표를 했고,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지나친 잘난 척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한참 어린것만 같이 느껴지는 아이들이 낯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와 닮은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화나 청소년 서적보다 고전을 유독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안의 화자들이 내가 느끼고 듣는 것을 함께 듣는 동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되어 뿌리를 내리고, 계속해서 내려가 뚜렷한 결론 없이 헤매는 감각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흔히 겪는 일이었다. 현실엔 나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외로울 때마다 더 책 속으로 깊게 숨었다.
다 커서 TV에서 오은영 선생님이 아이들의 '기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어릴 시절의 나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기질이란, 양육 환경이나 부모님의 태도와는 별개로 사람마다 타고나는 본연의 특성이라고 한다. 나는 본래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고, 그 예민함이 어린 나에게는 스스로도 버거운 짐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어릴 적 나와 닮은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설명해 주는 그 프로그램을 보며, 마침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개념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뜻의 HSP는 ‘초민감자’로 번역되기도 하고, 공감 능력에 중점을 둔 ‘엠패스’라는 개념과 통합해 불리기도 한다. 때로는 ADHD나 자폐 스펙트럼과 함께 신경다양성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기준과 카테고리화 방식은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HSP가 일반적인 신경 발달과 특성을 지닌 신경전형인과는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HSP는 인생 내내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라는 거대한 질문을 달고 산다. ‘예민함’이라는 기질적 특성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큰 짐처럼 느껴져 힘겨울 때가 많다. 바람의 냄새나 소리, 머리카락의 움직임, 옷깃에 닿는 감각 하나에도 미쳐버릴 것 같은 압도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선풍기 바람을 참을 수 없고, 몸의 온도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견디기 어려워 여름이면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자주 한다. 찬물조차 쉽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성장하면서 신경을 끄거나 켜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게 된 것 같다. 고통스러운 치과 치료나 피부과 치료도 남들보다 감각의 스위치를 끄는 연습을 부단히 한 덕분에 비명 한 마디 없이 잘 참아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HSP에 관련된 책들만 찾아 읽던 때가 있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일레인 아론, <예민함이라는 무기> 롤프 젤린,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율리아나 포스터,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 제나라 네렌버그,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최재훈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어떤 책이나 개념에서는 내가 단순히 예민한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고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되기도 하고, 자폐 스펙트럼을 넘어선 신경다양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현재는 신경다양성에 관련된 책들까지 읽고 있다. 나의 경우,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으로 분류되는 몇 가지 특성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기존 진단법상 자폐인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쨌든 진단명은 결국 의료체계, 보험사, 혹은 장애 진단 등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인간이냐이지, 어떤 진단명을 가지고 있느냐는 상관없다.
물론, 위에 언급된 많은 책들에서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잘 설명되어 있듯이, 예민함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 예민한 기질은 그저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장애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나의 예민함을 몹시 사랑한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기억이 또렷한 편이다. 말을 떼기 전의 기억 속에도 감정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8개월부터 말을 시작했고, 19개월쯤 동생들이 태어났는데, 그때 이미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기 때의 기억부터 남아 있는 것이다. 너무 어른스러운 아이라 ‘징그럽다’는 말을 듣곤 했던 아이였다. 어른들이 내게 그런 표현을 쓸 때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고, 나의 남다른 면이 마음에 걸려 더 아이답게 굴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마저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무심히 넘기지 못한 감정의 파편들이 나를 자극해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생겼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압도되는 감정이 강렬히 남아 있어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감정적 기억이 또렷하다는 것은 때로는 짐이 되지만, 그만큼 자기 성찰과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읽어온 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에서 받은 압도적인 경험들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연히 읽은 심훈의 <상록수>에서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청소년기가 지나서야 이 소설이 농촌 계몽 소설로 분류되고, 일제강점기와 사회 개혁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릴 때의 나는 그저 주인공들의 사랑과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른들이 내게 “이 책을 지금 나이에 읽느냐”며 놀라던 기억이 더해져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망과 함께 더 특별하게 남은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었던 <죄와 벌>도 여전히 선명하다. 주인공의 죄책감과 내적 갈등이 아직 초등학생이던 내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면 웃길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작은 죄를 짓고도 잠 못 이루던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속으로는 스스로를 버거울 정도의 나쁜 아이라 느끼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받는 착한 아이이고 싶었다. 그래서 사소한 잘못을 자꾸 합리화하려 하면서도 잘되지 않아 괴로워하던 내 일상과, 주인공의 갈등을 나름대로 비교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예술 세계에서 받는 영감과 감동은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수많은 철학적 질문들이 던져질 때면, 끝없이 깊어지는 사유와 겹겹이 쌓여가는 감정들이야말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는 이 깊이와 층위를 평생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의 극단적인 감정의 스펙트럼마저 용서하게 된다. 슬픔과 괴로움의 극단에 치를 떨다가도, 기쁨 또한 남들보다 더 깊고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왜 나는 이렇게 감정에 휘둘릴까,” “왜 나는 중심이 없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나의 기질을 싫어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질마저도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않고 충분히 그 모든 감정의 진폭을 기꺼이 느끼는 때가 온다면, 무던함에서 오는 단단함과는 또 다른, 더 강력한 중심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청소년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나는 나의 예민한 기질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단순하고 무던한 제3의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내면에서는 많은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 앞에서는 “뭐 어쩌라고”를 외치는 용감하고 명랑한 아이로 보이고자 했다. 기를 쓰고 단순해지려 애쓴 덕분에 ‘단무지(단순무식지랄)’라는 별명을 영예롭게 껴안았고, 그에 걸맞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다 나의 예민함이 드러날 때면, 내가 얼마나 무신경하고 멍청한지를 오히려 증명하려 애썼던 것 같다.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 안쓰러운 자아와 거짓 자아가 충돌하며 성장한 나는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 거짓 자아가 꽤나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허허실실 웃으며 사람 좋은 척을 하곤 했고, 그 덕에 ‘성격이 좋다, 둥글둥글하다’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나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칭찬이자, 예민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극찬이라고 느꼈다.
현재의 나는 나의 예민함을 굳이 감추려 애쓰지 않는다. 남들에게 맞추는 삶이 자기 파괴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큰 소리나 강한 빛이 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담배 연기나 향수 냄새가 어떻게 나를 미칠 듯 괴롭게 만드는지 솔직히 이야기한다.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과 말이 내 내면을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내 안에서 복잡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털어놓을 때 어떤 이는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흥미롭게 들어주는 사람도 있다. 운이 좋으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억압하는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이제는 풍부하고 진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섯 살 때쯤 길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에게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내가 옆집에 간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혼자 멀리 있는 친구 집까지 찾아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익숙한 동네를 지나 큰길에 들어섰을 때, 혼자 용감하게 나섰던 마음과는 달리 낯선 길에서 겁에 질려 커다란 어른들의 그림자 속에 갇힌 듯한 혼란을 느꼈다.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눈물이 터졌다.
마침 나를 발견한 한 젊은 여성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또박또박 우리 집 전화번호와 내 이름, 엄마 이름을 말했다. 그녀는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엄마가 올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엄마가 나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을 때 느꼈던 안도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낯선 길 한가운데서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을 때가 있다. 낯선 공포에 압도되어 울음을 터뜨리고, 혼자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어릴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그 상냥한 언니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내가 내게 손을 내밀고, 무슨 일인지 조용히 물어봐 준다.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너무 깊게 파고들어 어둠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나는 나에게 부지런히 손을 내민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열심히 찾아내야 하고,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착실하게 바라봐야 한다.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고, 성장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도 예민한 기질에서 비롯된 성향일 것이다. “왜 나는 이것밖에 하지 못할까” 하는 좌절감은 곧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지고,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은 이제 나의 강력한 정체성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것마저 예민함의 산물이라면, 나는 예민함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