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land Sep 11. 2023

등산을 시작하다

운동중독일지

[운동중독일지_등산01]


나의 첫 등산에 대한 기억은 5년여 전에 제주도 한라산을 올랐을 때이다. 내가 나의 의지로 등산을 하겠다며 산을 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운동은 흥미도 취미도 없었다. 평소에 산 근처에도 안가던 내가 산을 오른 이유는 제주도에 약간의 모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주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돈다거나, 배낭을 매고 순례길을 걷듯 제주도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체력도 준비되지 않았다. 함께 떠난 일행과 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한라산이 하루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치의 경험이었다.


한겨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온 일행과 함께 한라산으로 향했다. 겨울 산행을 위한 등산화고, 아이젠이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기에 모든 장비는 대여를 해야 했다. 각자 배낭에 마실 물과 김밥만 들고 산행을 시작했다. 관음사에서 시작해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9시간의 산행을 겨우 끝마치긴 했지만, 나에게 이 산행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초반부터 확연히 뒤쳐지는 나를 위해 나의 일행은 내가 마실 물까지 함께 들고 올라야 했다. 숨을 고르기도 바빴기에, 산행 내내 대화도 거의 하지 않고 발 끝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제주도의 산행은 흑돼지와 함께 곁들일 이야깃거리가 되어주었지만, 산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엔 나의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나를 어르고 달래며 함께 동행해준 일행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2021년 4월, 울릉도에서 성인봉을 오르기로 계획했을 때, 설렜다. 이번 산행은 5년 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우선 마일리지 적립하듯 차곡차곡 쌓아온 체력이 있었다. 스무살부터 함께 20대를 보내온 대학 동기들과 함께 귀한 시간 맞춰 떠나온 8박 10일의 소중한 일정이었다. 섬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의 산행은 계획 되었고, 못할 일이 없어보였다. 어쩌면, 5년 전의 내가 그랬듯이 일행 중 누군가는 힘들어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가득찬 산행이 시작되었다. 함께 떠난 H는 크로스핏으로 운동에 단련된 상태였고, M은 운동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나와 갖은 기상천외한 여행을 함께 다니며 서로의 회복탄력성이 얼마나 좋은지 이미 충분히 경험했으니 이번에도 잘 다녀올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오전 11시 등산을 떠났다. 울릉도의 4월은 맑았고, 싱그러웠다. 발길이 닿는 모든 공간을 누볐다. 셋 다 초행이기에, 등산로 입구를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헤매는 와중에도 즐겁기만 했다. 우리의 일정은 단순했다. 나리분지에 가서 점심을 먹고, 성인봉을 올랐다, 울릉도 남쪽 도동항으로 나와 저녁을 먹는 일정이었다. 나리분지로 가는 길에 처음 들어보는 알봉분화구 탐방로를 마주하곤 과감히 올라갔다 내려오며 우리는 여유로웠다. 오후 13시30분, 나리분지에서 삼나물무침과 산채전으로 점심을 먹으면서도 볼 수 있는 모든 곳은 들어가 봤다. 울릉도 나리분지에만 남아 있다는 너와 투막집과 억새 투막집의 터를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분석한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오후 14시. 우리는 성인봉 등산로 입구를 들어섰다. 울릉도 성인봉은 울창했고, 난생 처음보는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산 곳곳 자리잡은 명이나물은 눈길을 빼았았다. 섬백리향 군락까지 완만한 길을 산책하듯 지나고 나자 경사가 급격히 높아졌다. 원시림의 산 한가운데 우리가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산에서 내려오려면 우리는 오후 4시에는 정상에 도착해야 했다. 심지어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해 걷고 있으니, 해가 산을 넘어가면 급격히 어두워질 테니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목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계단을 오르고 올랐지만 끝이 나지 않았다. (후에 알고보니 이 나무 계단은 2,200 계단이 넘었다.) 그리고 일행 M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서 있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가방을 빼앗다 시피 들었지만, 그럼에도 속도는 점점 쳐졌다.


이거 좀 큰일이다. H와 나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산을 오르며 하산객들을 만나 얼마나 더 올라야 정상이 나오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10분 남았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게 우리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200m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이 언덕만 넘으면 평지라고 M에게 말하며 조금만 더 힘내기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산에서의 100m는 평지에서의 100m와 다르다는 것과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계단이 시작될 거라는 건 말할 수 없었다…(이어서)

작가의 이전글 내가 보는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