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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Jan 08. 2024

이번엔 일출마라톤


또 뛰었다. 새해 첫날부터 버킷리스트를 이루었다. 이른바 일출 마라톤. 1월 1일 아침, 양천구에 모여 사람들과 함께 10KM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였다.


함께 달리자는 친구의 제안에 꽤 오래 고민하던 끝 신청서를 제출하고 참가비를 입금한 것은 대회가 열리기 12일 전, 참가 신청이 마감되기 약 30분 전이었다. 역시 타고난 벼락치기형 인간인 만큼 마라톤 대회를 호기롭게 신청하고 나서도 뜀박질을 한 것은 오로지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버스를 타기 위해서 뿐. 연말의 느슨한 분위기에 취해 사람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31일 밤이 되었다.


근래에 달리기를 한 적이 없을뿐더러 겨울 철에 야외 달리기는 처음이었다. 기모 운동복, 비니, 장갑, 넥워머, 아 러닝벨트랑 무릎보호대가 어디 있더라.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기다리며 주섬주섬 러닝화를 비롯한 장비들을 챙기는데, 이거 참 이제 와서 못 뛴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 야외에 모인 사람들을 중계를 통해 지켜보며, 저들은 왜 이 추운 날 따뜻한 집 놔두고 저기에서 떨고 있을지 안타까워하다 보니, 어라 내일의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잖아?!


그렇게 새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해 둔 전투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여름 이후에는 달려본 적이 없었지만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결국엔 뛰어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은 아마도 새해 일출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부터 마라톤 행사장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남녀 각 3위 안에 드는 주자에게는 선물로 소정의 물품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지만 내 목표는 오로지 완주, 그리고 완주, 그리고 완주 하나뿐이었다.


신정교 다리 밑에서 출발하여 안양천을 따라 달리다 한강 안양천 합수부 인근에서 다시 복귀하는 코스는 만족스러웠다. 공원길 곳곳에는 블랙 아이스가 끼어 있을지언정 날은 푹했고, 코스는 오르막 없는 평지였다. 함께 신청한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도 함께 뛰는 마라톤 풍경은 새해 첫날답게 옹기종기 평화로웠다. 재빠르게 나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러너가 된 기분에 취해 심장 박동 소리를 느끼며 힘껏 나아갔다.


5킬로를 넘기고 나자 긴장이 풀렸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지쳐서 걷게 되더라도 출발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7킬로를 넘어가자 슬슬 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여름에 무리해서 달릴 때부터 통증이 생긴 왼쪽 고관절 부분이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묵직하게 아렸다. 여기서 무리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테다. 속도를 줄였다. 한참 뒤에서 달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제쳐 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속절없이 지켜보면서 천천히 몸을 달래며 발을 내디뎠다.


풍경과 소리가 수채화처럼 흐려졌다. 도착지점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져서 시선을 멀리 둘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내딛을 땅을 바라보며 단 두 걸음, 세 걸음 다음만 응시하면서 뛰었다. 그렇게 겨우 끝자락에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번에도 겨우 골인에 성공한 나는 몸이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다음번에도 뛸 수 있길 바라며 몸상태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나의 마라톤은 대회가 끝난 뒤 시작된다. 마라톤이 끝나고 나서야 그때의 기분을 되새기며 달린다. 이렇게 또 나는 다음 마라톤을 신청할 것이다. 이번에는 부디 미리 준비할 수 있기를, 더 멀리 달릴 수 있기를, 다음은 하프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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