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겪었음에도 포기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면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소설가일 때도 있고, 영화감독일 때도 있다. 한때 많은 작품을 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더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있고, 수많은 부침을 겪고 나서 우뚝 선 이들도 있다. 그렇게 책장을 뒤적이다 보면 <GV빌런 고태경>을 집어들게 된다.
준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지켜본다. 나이 오십이 넘을 때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한 채 수많은 영화의 GV에 참석하면서도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나리오와 연출노트를 작성하는 그.
그런데 사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가족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까. 나의 아빠는 항상 의욕이 넘치셨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아빠는 항상 무언가를 준비하셨고, 멈추지 않았다. 매년 합창대회에 오르기 위해 매주 노래 연습을 빼먹지 않는 아빠의 모습, ‘세일즈 맨의 죽음’ 연극에 참여하기 위해 낭독을 하는 아빠의 모습. 나는 어쩌면 어릴 때 부터 ‘중꺽마’의 마음을 보고 자랐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라서일까. 나의 마음 또한 쉽게 꺾이지 않는다. 수많은 좌절의 시기를 보내왔음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건, 준비되지 않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꺾이지 않겠노라 마음을 다잡아고, 어느 순간 지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그때 필요한 것이 “내 일상의 오케이 컷”이다.
편집해버리고 싶은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 아주 가끔 스쳐지나가는 오케이 컷 순간들. 눈물나게 즐거운 순간들, 배아프게 웃었던 순간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마음이 충만해 졌던 그런 순간들. 적어도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마음이 바래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소중한 오케이 순간들을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