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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노오 Aug 14. 2024

5.동행

Again

  독자여, 이 글을 쓰는 오늘 오후의 하늘은 감히 눈이 부시다고 할 수 있겠다. 간간이 보이는 뭉게구름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스케치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하며, 하늘빛의 투명함은 하얀 달을 기꺼이 내어줄 듯하다. 그런데, 이 좋은 날에 <결혼>에 대해 쓰려하니, 왜 나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을까. 난 그저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해 쓰려하는 것뿐인데.


그도 나에게 결혼을 제안했을 때만큼은 무슨 노래 가사처럼 <내 전부를 다 바치, 네 눈빛 흔들리지 않게 널 바라보며 서 있을 것(Day6)>이라 약속했건만, 말 뿐이었음을.


어찌 인간의 입이 항상 진실만을 말하겠는가.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한 것이었음을.


 그와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골길에 아무렇게나 누워 그 별빛을 눈에 담을 때에는 이런 결과는 상상조차도 못했었다. 수 백 년 전 혹은 수억 년 전에 쏘아진 빛이 육지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 중에 나를 선택했다고 믿어버린 당시의 풍부한 감수성과 어리석은 판단력을 원망할 뿐이다.


 에헴~ 그렇다면 <나의 결혼>에 대하여 이제는 열어보아야 할 듯하다. 랑의 결실 결혼이라 생각한다면, 미안하지만 더 이상 읽기를 권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동안 만이라도 사랑의 한시성과 인간의 유약함을 떠올려준다면, <불행했던 나의 결혼>을 이야기하려는 이 가여운 작가에게 적게나마 아량을 베풀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의 비극의 시작이 결혼이라면 믿겠는가. 성장 중에 존재하는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의 갈등, 그리고 고된 사회생활로 인한 눈물 젖은 베개를 비극이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혼은 그런 종류의 어려움과는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처음엔 외로움이 그것이었다. 재미있지 아니한가. 혼자는 아니 된다 하여 둘이 되고야 말았건만, 나는 어찌 그토록 외로웠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이 아니라 대전이었다. 그가 결혼 전에 이미 대전 발령이 나 있었고, 자연스레 대전에 신혼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지방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대전이란 생소한 도시였고, 그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이 컸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의지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의지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를 더 사랑하려 노력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해야 하는 노력은 세상에 없다고 단언한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은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고, 그런 그를 위한 그 어떤 희생 또한 무가치(無價値)라고 진실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


 그는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다. 아니, 흥미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나는 마치 그가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새장에 잡아놓은 새 같았다. 그리고 그가 바로 그 새장의 주인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가 나와 결혼을 한 이유는 점점 명확해졌다.


 가부장적인 보통의 30대 남자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자 위치의 남성성을 과시함과 동시에 본인의 사회적 위치에 어울리는 장식품이 가정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기를 바랐던 것.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섬과 같은 도시 대전은 나에게 말을 걸어줄 여유가 없었다. 길고 긴 태양은 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TV에서는 매일 재방송만 하는 것 같았으며, 냉장고 문을 아무리 자주 열어도 음식은 줄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혼자였다. 27년간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던 내게, 그는 완벽한 외로움을 결혼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그는 굳이 내가 없어도 혼자 지낼 수 있던 사람이었고, 내가 있어도 집에 있고자 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내>라는 것은 자신의 인생의 보조배터리 정도의 의미였지 않을까 싶다. 그는 언제나 나를 혼자 두었다. 그가 나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겨우 네다섯 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그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였고, 퇴근은 새벽 1시, 2시.. 혹은 내가 인지 못하는 어느 시간대였을 것이다. 당시 내 눈에 비친 그는 가정을 책임지려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내 마음이 반영된 환상이었다. 그리고, TV광고 속 어느 가정의 웃음이 나의 가정의 웃음이길 바랐던 나의 허영은 끝맺음의 때를 알지 못하게 했다.


 어느 누가 사랑을 노래하고 삶을 찬양했는가. 사랑과 삶이란 노력한다고 얻을 있는 성취 따위의 것이 아님을 아는가. 그것들은 묵묵히 일하는 호흡 속에, 우연히 잠깐 스치는 인연의 눈빛 속에, 동네의 작은 커피숍에서 찾는 여유 속에, 바로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임을 그때는 몰랐었다.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젊기에, 경험하지 못했기에, 어리석을 수밖에 없었던 그 판단들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묻겠는가.


 내가 한 결혼은 두 남녀가 일부일처제로 살아가기로 약속한 일종의 계약이었고, 부모가 인정한 정해진 공간에 각자의 옷가지를 정리해 두고 각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잠시 머무는 것쯤으로 정의되었다. 결국 나는 이러한 결혼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체념이라는 선택을 했다. 그래서 변화를 시도했으나, 변화의 범위를 <나>가 아니라 <그렇게 머무는 공간>으로 하는 실수를 범하고야 만다. 이것은 곧 회피였음을 몇 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으나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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