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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노오 Aug 03. 2024

2. 동거

따로, 또 같은

 주 토요일, 빗길을 뚫고 도착 를 쓰레기 더미 위에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이 남자가 살고 있는 집은 재미있게도 내가 살던 집이기도 하다. 10년 전쯤이긴 하지만.


  아침이면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질을 하고서도 더 할 일이 없는지 뒤돌아보던, 한때  너무나 소중했던 나의 공간이자 내가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곳. 벽지 색과 마루장판, 욕실의 타일 디자인도 내가 골랐으며, 싱크대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맞췄었다. 햇빛이 잘 드는  한쪽 구석 가족 여행으로 간 제주도에서 구입한 크리스털 썬 캐처 열린 베란다 문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면 그 빛이 내가 앉아 있는 소파까지 넘어와서 나를 종종 눈을 감게 만들했었다. 그리고 거실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으며, 탁자 위와 책장에는 여행지에서 찍은 작은 액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참으로 아늑고 편안했던 우리의 공간이었다.


 주중에 전화로 토요일 오전에 이 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지난주 일에 대한 사과로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으나 나는 없는 약속을 만들어 내어 거절했다. 그 공간에서 잠시 만나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전하자 그 역시 동의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지난주 방문했을 때는 온 집 안을 덮어버린 암모니아 냄새에 흥분한 나머지 지나쳤던 것들이 오늘은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뜬 벽지는 내가 돌보지 않고 흘러갔던 세월을 짐작하게 했으며,  시절의  내 손 때가 묻어있는 물건들 있던 자리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 숙한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무겁게 가라앉은  퀴퀴한 공기 지금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감상이 아니라  환기고 말하고 있었기에,  안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젖히고 다녔다.


"왔어?" 창문 여는 소리에 그가 의 존재를 알아는지,  문 밖으로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린다.  순간 습관처럼 알몸으로 나올까 아차 싶었  그는 나를 완벽한 타인으로 인식하고 위아래 옷은 다 갖춰 입고 나 주었다. 다행히 오늘은 사리분별이 가능한 날인 듯싶다. 한때는 남편이었으나 지금은 외간 남자인 그의 알몸을 주말 아침부터 보지 않았단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스럽던지.


"비밀번호 바뀌지 않았길래, 그냥 들어왔어. 하윤이 생일. " 하윤이는 우리 둘이 함께 낳아 키우던 딸아이의 이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략 10년 전 까지는 부부라 불렸던 자들이고.


 독자여, 잠깐 덧붙일 말이 있다. 고작 변치 않은 현관 비밀번호에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 혹은 추억>등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 것만큼은 피해주기 바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현관 비밀번호 외에는 모든 것이 변했다. 좀 더 상세 설명을 덧 붙인다면, 그는 단순히 귀찮아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고 보는 게 훨씬 더 정확하다. 한 때 살 비며 살았던 가 최소 독자보다는 더 그를 잘 알지 않을까.


"청소는 좀 했어. 뭐 내가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쓸만한 집 아니야?"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 마치 시험에서 <통과>라는 합격증을 얻기 위해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변하지 않은 것도 있구나 싶었다. 이 집이 진정 살 만한 집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지 그의 몫은 아었다는 걸 그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러게, 쓸만하니 집을 샀겠지?" 가 같이 살 때는 2년을 계약한 전세였건만, 지금은 그의 집이. 이혼 후 우리는 주로 문자와 전화로 서로의 용건을 간단히 전하곤 했지만,  렇게 직접적인 대면은 8,9년만에 처음인 것 같다. 당연히 어색하기 그지없었고, 할 말도 없었기에 묘한 정적만이 우리 주변에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는 배가 더 나왔고, 머리도 많이 희끗해졌다. 아마도 그의 눈에도 내 처진 피부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쏴아----!>하 갑작스러운 호우가 이닥쳤다. 짝 열어 놓은 창문 덕인지 비 오는 소리는 말할 수도 없이 컸고, 이는 리의 시선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우리가 만난 이유를 기억하게 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해 가장 익숙한 공간인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의 상하부 장에는 신기하게도 10년 전에 내가 애정하며 사용했던 빵틀, 쿠키틀, 다기세트, 아이의 유치원 도시락, 수저세트까지 지금은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들이 먼지 쌓인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순간 10년 전의 어느 날의 내가 된 듯해서 아찔했다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들이었으나,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잠시라도 그리워질까 봐 빨리 시선을 거두어 버렸다.


  분명 저 남자와 나는 사적인 관계는 이미 끝났고, 공적인 문제만 남아있어 방문객의 입장으로 여기 서 있건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저릿함이 왼쪽 가슴을 자극했다. 단순히 부엌은 그의 생활공간이 아니었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둔 것임이 분명 하나 내가 이전에 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당연한 듯 누렸던 삶의 기쁨과 같여유가 이 컴컴한 집구석에서 그렇게 잠자고 있음을 깨닫게 되니 슬픈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저 밝았고, 희망에 가득 찼으며,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라고 고백하던 그 무지갯빛 나의 젊음이 부엌의 어느 구석에서 너무나 우연찮고 갑작스럽게 발견어 감정이 요동쳤다. 울컥하려는 마음을 다스린 채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자리를 옮겼고,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올리며 그 사무(事務)라고 불리는 것들을 처리하고자 했다.


"냉장고 이거 아직도 써? 이거 버려야 할 것 같은데, 밑에 물 새는 거 보여? 냄새도 심하네."

"세탁기도 너무 오래 안 쓴 거 같아.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빨래가 되겠나."

"정수기도 설치해야 할 것 같고 말이야."


"................."  


"어? 내 말 듣고 있어?"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그를 향해 물었다.


"어, 듣고 있지. 냉장고랑 세탁기 정수기 뭘로 할지 문자로 보내. 내가 구입해 놓을게. 근데 너 여기서 언제 나갈 거야?" 이 집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너 여기서 언제 나갈 거야>에 대한 답변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가장 급하게 처리해야만 하는 일(事)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의 집이니까.


"왜, 급해?" 하던 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어나자마자 아침부터 또 어딜 가려고 저러는지 싶었으나, 사실 우리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그런 사적인 질문을 나누는 사이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냥 두었다. 오늘 또한 그러한 날 들 중에 하나일 뿐. 그러나, <그냥 두었다> 다시 말해서 <그냥 그 자리에 있음을 지켜 봄>이야말로 우리 사이의 완벽한 간격이었음을 아는가. 좁아지거나, 넓어지지도 않는 그 간격은 앞으로도 이렇게 꾸준한 인연을 맺도록 할 것이라는 확신을 서로에게 주었다. 연락을 하면 받아주는 것이 의무이고,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야만 했으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서로의 공적인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 어찌 보면, 사무적이나, 어찌 보면 삶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관계. 참으로 이 오묘한  관계를 1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것이 우리였다.

 

 그는 그의 시간엔 맞춰 그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나 역시 그러했다. 비록 서로의 어느 토요일의 오전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나 그와 내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긴 하나,  2인3각 달리기와 같은 일을 이제 와서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부담일 뿐.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아.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정리할 거 있으면 정리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리스트 만들어서 보내고. 나 샤워는 사우나 가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오늘 안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편하게 있다 가도 돼."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오늘 우리가 만난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버리고 만다. 정말 탁월한 능력이다. 그리고, 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아, 맞다. 하윤이 방 꾸며야 할거 아냐? 침대랑 책상, 옷장 사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본인이 챙길 거지? 그럼 그것도 그 리스트에 적어서 보내. 나 간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내가 오늘 온 이유는 앞으로 구입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이며, 그것이면 충분한 게 아닌가 하며 그 집을 떠났다. <그>야 말로 나를 만난 용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나>야말로 오랜만에 마주한 그와의 어색함이란 무게에 압도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내가 그의 감정을 알아야 할 이유도 필요성도 없지만, 괜히 진 것 같았다. 백번을 져도 그에 대한 나의 감각은 무감각 그 자체이긴 하지만,  내가 졌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 집에서 그가 사라지니, 예나 지금이나 마음만큼은 한결 더 편해졌고,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정확해졌다.


'정신 차리자. 빨리 집을 집답게 해야만 해. 내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


그렇다. 나는 과연 이 집이 그와 내가 영원히 지우지 못하는 공통분모인 김하윤이 살 만한 공간인지 확인을 하러 방문했었던 것이고, 그는 결국 나에게  합격점을 받아냈. 그리고 그의 딸이자 나의 딸인 김하윤은 이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앞으로 녀는 그녀의 아빠와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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