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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노오 Aug 07. 2024

3.편지-1

나의 딸에게

  베로니카, 정말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는 것 같구나. 네가 어릴 적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사랑해>라고 쓰여진 쪽지를 그렇게 서로 나누었건만, 네 일과가 바빠져서 인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최근에 들어서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참으로 많아지는 것 같다. 네가 바빠지니, 나는 이제 완벽한 정서적 독립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구나 싶다. 네가 몇 년 후면 대학에 가서 너만의 미래를 계획하고 하루를 보낼테며, 남자친구도 만나야 할 것이고, 그동안 놀지 못한 한도 풀어야 할텐데, 어디하나 엄마가 낄 데가 없는 것 같으니, 엄마도 혼자 노는 법을 천천히 익히려고 해.


 최근에 하루 걸려 쓴 글을 네게 보여주니, 네가 내게 했던 그 신랄한 평가에 입을 다물지 못했었지. 엄마의 글을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네 고집이 얼마나 대견하게 느껴지던지, 넌 알까? 더 잘 쓴 글을 보여 주겠다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도서관에서 제목도 저자도 모르는 책인지 칼럼인지를 찾기 위해 하루를 소비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그냥 혼자 둬도 잘 크겠다 싶더라. 엄마 웃어도 되는거 맞겠지?(그래도 내신 등급도 신경 써 주길 바라.)


 둘이 아침 9시부터 각자의 음료를 하나씩 챙기고, 도서관을 구석구석 다니며 이 책, 저 책 뒤지고 다니면서 가끔씩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 바라는 건 젠 무리겠지.  근데 엄마는 너무 그때가 그리울 것 같아. 엄마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모든 순간속에 네가 있어서 네게 자꾸 기대려 하는데, 이젠 그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부쩍 든단다. 게다가 이제는 엄마보다 훨씬 넓은 세계관을 가져버린 너말도 통하지 않으니, 점점 대화도 자꾸 끊기고 재미도 없고 말야. 우리 딸이 어릴 적엔 엄마 이야기를 그렇게 잘 들어주고 끄덕끄덕 해줬는데, 이젠 엄마가 우리 딸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가 온 게 아닌가 싶어. 앞으로는 네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의 공부를 해서 좀 더 네 말에 귀 기울여주는 엄마가 되어 줄게. 새로운 분야의 공부가 될 것 같아서 머리가 좀 아프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볼거야. 네가 읽으라고 쌓아둔 책 지금 엄마 옆에 있니까 기대하렴.


 곧 있으면, 점심을 먹고 학원에 갈 시간이구나. 하늘에 구름이라곤 찾아보긴 힘들어서 많이 더울 것 같은데, 또 들어오자마자 얼마나 불평불만을 늘어 놓을지 눈에 선하다. 엄마 오늘 오전 글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우리 딸 점심 준비하러 일어나야겠다. 아무쪼록 그늘 찾아 요리조리 햇빛 피해가며 잘 들어오렴. 사랑한다. 내 딸 베로니카.


2024년 8월의 어느 주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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