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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노오 Jul 31. 2024

1.악녀

시작

"너 어디냐?"


  퉁명스러움을 넘어 조소에 가까운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집 안 곳곳에 울려 퍼진다. 하루종일 내린 비 때문일까. 내 목소리의 날카로움이 칼날이 되어 눅눅해진 벽지에 새겨 지는 것은 아닌지 순간 톤을 낮출까 했지만, 오기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 야, 너 도대체 어디냐고!"


벨이 두 번은 울렸으려나. 예전부터 그는 전화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받았다. 성질이 급한 나를 배려해서인지, 전화 받는 습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에도 우리 사이에 통화 내용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란 것은 둘 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아침 9시도 안된 시각에 내 전화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 아, 짜증나. 아침부터 왠 전화질이야." 잠이 덜 깬 목소리는 걸쇠가 덜걱덜걱 거리는 듯 하다. 내가 오늘 이 집에 오기로 한것을 완벽하게 잊었 알도록 하는 첫마디였다.


 " 몰라? 내가 오늘 온다고 일주일 전에 문자 보냈었잖아. 집안 꼴이 이게 뭐야? 너 청소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어? 맨발로 걸어다닐 수가 없잖아. 화장실은 왜 저래? 물은 내리고 사니? 냄새가 나서 머리가 아프잖아."


내가 지금 왜 화가 이토록 났는지 쉴 새없이 설명하긴 했으나 분에 못이겨 줄줄이 읊어댄 저 문장들이 얼마나 그의 귀에 다다랐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화기를 든 손은 그 목적지를 잃은채 허공을 떠돌고 있는지. 그리고 역시나 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오빠, 누구야?전화 끊어. 피곤해." 여자다. 대답을 해야하는 그는 사라지고, 고작해야 침대 속 외간 여자의 늘어진 목소리가 나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그녀의 애교섞인 그를 향한 말투는 나를 정적속으로 끌고 가 버렸다.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인지, 하룻밤 상대인지 알 길은 없으나, 하나 만큼은 분명했다. 남자 보는 눈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애송이란 것.


 "야, 시끄러. 조용히 좀 해봐."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침대 속 여자인가. 나인가. 갑작스런 등장인물에 혼란스러운건 나도 마찬가지다.

 

 "너는 주말 아침에 이렇게 막 전화하는거 정상이라고 생각해? 또 뭐가 문제야." 그의 목소리엔 부끄러움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대 속 그녀는 이미 나와는 아무 상관없으니, 떳떳하다는 것일까.


"그리고, <야> 라고 부르지 말랬지. <야>가 뭐냐?" 화는 분명 내가 내야 정상이건만 어제 마신 술로 인해 현실 파악이 덜 된 모양이다. 이 상황에 무슨 정신으로 호칭정리까지 신경을 쓰시는지 아직도 정신은 안드로메다에 있는 듯 하다.


" 내가 그럼 모라고 부를까? 아까 여자처럼 오빠라 불러줘? 본인 또한 내가 오빠라 부르는거 듣기 거북하지 않아?" 그와 나의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본인>이 된지 오래다. 주민센터 직원이 민원인에게 "본인 맞으세요?" 할 때의 그 본인 말이다.


 "아. 됐고. 무슨 일이냐고." 이제야 좀 신을 차린 듯 해보인다.


"내가 일주일 전에 여기 온다고 했잖아. 어느정도 정리는 해놓고 있어야 하는거 아냐? 지금 뭐하는거야? 나 지금 화장실도 못 쓰겠어. 관리사무실 화장실 써야 할 판이야. 이렇게 해놓고 나보고 와보라고? 장난해?" 다시 한번 명확하게 내가 전화를 건 목적을 설명했다.


조금 머뭇거리나 싶더니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 아.아..그게 오늘 이었나. " 뭔가를 마시지 여유로운  듯한 간격으로 대답도 하는둥 마는둥.  아침부터 꼬여버린 일정으로 정신이 사나운데, 느긋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내 화에 찬물을 끼얹다. 처음부터 나는 화(火)였고, 그는 물(水)이었다. 내가 별 거 아닌 일에 흥분을 하면, 그의 반응은 언제나 "뭐지?" 였고, 그의 대담함에 편안함을 느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여인과 침대에서 뒹구는 중에도 나의 전화를 받아내고, 그 여인을 뒤로 한 채 나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그의 장점중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대담함 때문이리라.


"까먹고 말았네. 어제 문자라도 좀 주지." 그는 이미 나에게 미안함이란 감정에 대처하기 보다는, 사건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음주에 다시 와. 내가 집 청소 해놓을게." 아무렇지 않은 평온한 목소리. 그의 머릿속에선 이 사건의 정리정돈은 다음주 중 청소라는 결론을 이끌어냄으로 끝난듯해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게 나란 존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해야 하는 누군가 일뿐.


"오빠!" 다시 들리는 신경질적인 여자의 목소리.

뭐가 그리 급했는지 "끊는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통화는 종료 되었다.


나는 왜 토요일 아침부터 이 쓰레기 더미인 집에 와 있는 것인지 내 다리는 갈 길을 잃고야 말았다. 그러나,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으니 오늘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넘쳐날 것이다.

 

 베란다로 가 외부 문을 열고 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시커먼 하늘에서 억수같은 비가 인정사정 없이 내리쳐 금방 바닥이 흥건해졌다. 몇 분을 그 곳에 있었을까. 복잡해보이는 도로에서 각양각색의 자동차들이 교통사고 한 번 없이 줄지어 각자의 적지를 향해 으로 달려가기만한다.


'비가 그칠 생각이 없군. 나도 가 봐야 겠다. 어디든 말야.'


 한껏 어둔 베란다 외부 창문을 뒤로 한 채, 전 남편의 집을 나섰다. 이 집이 물 바다가 된다 하더라도 나 역시 아무 상관 없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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