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사람

읽으면 쓰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쓰는 거였지 참.

by 해구

3월 28일 일기

[바쁨에 중독되는 사람] - 자유라는 사고를 멈추는 순간 얻게 되는 자유로움


나는 '작가다움'이나 '재능'같은 단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나는 작가가 맞는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나의 세상에서는 생각할수록 잘 알게 되는 것이 있고,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것이있다. 다행이도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늘 그때는,중요한 순간에는알지 못했다. 왜 생각하지 못했나, 생각해보면.... 바빠서.?


이걸 한 다음에는 저걸 하고, 저걸 한 다음에는 저어 어어기에 있는 걸 정리하면 된다. 근데 이걸 해내려면 이거 저거 요거를 해야 한다. 내 삶을 구원한 것들은 내가 '몰입한 것들'이었다. 흔히 '일'이라고 부르는 것들. 내가 몰입하는 순간에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반복할수록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기분이었고, 새롭게 태어난 나는 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그때의 내 등을 힘껏 밀어줬으니까. 버거운 일들을 해낼 때마다 얻는 성취감은 늘 내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나, 뭔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보통 이런 생각이 든다면 열에 아홉은 정답이다. 분명 놓치고 있는 게 있을 거다.

뭘 놓치고 있는 걸까.


+문제가 생겼다. 내가 몰입하는 순간에 배제되는 다른 중요한 것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 중요한 것들이 눈에 밟히고 밟혀서.. 어느 지점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이 일들.. 왜 하지? 이렇게 할 만한 이유가 있나?

언제부터인가 일을 끝내고 나면 허무함과 허탈함이 밀려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 느낌이란.. 그렇게 까지 할 일이 아니었어. 뭔가를 바라고 한일들이 아니었는데. 허탈감이 나를 치고 갔다. 분명 과정은 즐거웠는데, 끝이 나면 왜 이렇게 내 작품은 한낱 쓰레기 같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걸까.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에 3월의 내가 쓰다만 글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는 것과 정확하게 닿아있는 이야기다. 다행인 건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아서, 3월의 나에게 4월의 내가 대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동안 굉장히 괴로웠다.(지금도 진행형이긴 하다.) 괴로움의 원천은 명백하게도, 글이 안 써졌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소설의 이야기이다.) 여태까지는 글을 쓸 시간만 확보된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었다. 학교 강의, 과제, 알바, 소설 쓰기를 병행하면서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라는 건 어떻게든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몰입


몰아치는 과제를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하면, 주 5일 알바를 하면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몰입할 수 있는가의 이야기와는 별개다. 얇은 종이장 같은 글을 쓰기에는 충분하지만 밀도 있는 세계를 구축하기에는 부족하다. 내가 쓰는 소설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로, 내가 던져놓은 화두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울타리가 견고하게 쌓아져야 하는 과정이다. 지난 몇 개월간 그 생각의 울타리가 허술할지언정 무너져버린 적은 없었는데.. 최근의 내 울타리는 무너지다 못해, 없어진 상태다.


이유야 뭐,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너무 바쁘니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속에 고인 것들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좋은 책이나, 작품을 읽을 때면 찰랑찰랑 뭔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데 최근에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좋은 작품을 못 만나기도 했지만,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느냐, 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손이 안 갔다. 자극적인 일상의 크리틱 속에서 책이 주는 부드러운 자극을 잊어버린 느낌이다.


읽으면 쌓이고, 쌓이면 쓰게 되는 이 굴레 속에서 읽지도 않고 밑천이 드러난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이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다. 이야기 속에서 지구에 남아서 나를 기다리는 인물들을 생각하며 불편해했다. "나는 글 쓰는 사람 치고 밑천이 없으니, 대단한 걸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당히 내 마음에 차는 것들만 써 내려가자."같은 작년의 담담한 각오가 1년 만에 무너진 느낌이었다.


방금도 친구와 전화하면서 이런 생각들에 고통받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끝낸 참이다. 친구는 정신상태의 문제라고, 바빠서 그렇지 종강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맞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써지지 않는 공포가 너무 무겁다.







읽는 사람


우습게도 이렇게 말하지만, 문제의 해결점도 읽으면서 해결됐다.(나란 사람 참...)

채널 예스에서 연재 중인 김초엽 작가의 [창작과 독서]를 읽게 됐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 책은 못 펴겠고, 눈에 밟히던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읽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그 김 초엽 작가가 옮긴 글에서 나를 봤다. 김 초엽 작가의 글에서 작가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은은하게 해 본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소설 습작을 시작했을 때는 유독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거야.’ 아이디어를 적어둔 노트가 벌써 여러 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들 대부분은 소설로 완성되지 못했다.



KakaoTalk_20220409_124432679.jpg




생각났다.


나는 아는 게 없어서 쓸 수 있는 게 없어! 모르니까 찾아가며, 읽어가며 쓰는 거야!
하하하!


정신상태가 좋던 어느 날의 내가 친구에게 떵떵거리듯 말했었다. 김 초엽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부터 남몰래 소설을 썼고, 성인 되고 나서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했던 즐거운 일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든 글쓰기의 시작과 끝에는 책이 있었다. 읽는다. 쌓는다. 그러다 보면 쓰고 싶어 진다. 그렇게 쓰면 된다.


내가 대단해서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걸 만들려고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읽으면 쓰고 싶어 졌으니까, 그래서 쓰는 거였지 참. 늘 이렇다니까.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어서 다행이다.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준 글에 감사한다.













진솔하고 견고하게 쓰인 김 초엽 작가님의 글도 읽어보시라고 링크를 걸어둡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48402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에게는 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