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야,초조해하지 않는 거야."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6장 레이코씨의 말

by 해구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야,초조해하지 않는 거야."하고 레이코씨는 내게 말했다. "이게 내 또하나의 충고야.초조해하지 말 것.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일이 얽히고 설켜있어도,절망에 빠지거나 조바심이 나서 무리하게 서두르면 안 돼.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노르웨이의 숲 6장_요양원에서 만난 나오코와 레이코 중 레이코의 대사-




레이코씨의 물음에 와타나베는 "해보겠습니다." 라며, 크게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꽤나 담담한 얼굴로. 책 속에 와타나베의 표정이나, 말투나, 뭐 망설이지 않았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지만, 아무튼 그랬다.)


레이코씨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또 시간을 들여도 완전히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기다리는건 괴로운 거라고 했다.와타나베는 진짜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나오코를 사랑하냐고 재차 묻는 말에는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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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에,분명 수요일이었다. 그날은 오전9시부터 첫수업이 있었고, 밤11시까지 알바를 해야하는 날이었다. 전날밤에는 시험공부를 하느라 잠도 끊어서 잤다. 공부도 잘되진 않아서 기분도 별로였고, 불편한 사람이랑 동선이 계속 겹쳐서 억지로 웃고, 대화하느라 피곤했었다. 그 상태로 자전거 타고 알바처에 가니까 걸어다니는 시체였다.내가 봐도 내 몰골이 힘들어보였고, 선생님 한분이 힘들어보인다고 하셨다.


"힘들어 보이네."

"힘들어요."

"왜?"

"오늘 9시부터 집밖에 나와있어요."

"왜?"
"학교 수업때문이죠."

"그럼 학교 안다니면 되잖아!"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며)으엥? 그러면 졸업을 못하잖아요!"

"(내 양팔꿈치를 잡고 흔들며)으하하하!"


아마 큰 의미를 두고 하신 말은 아닌 것 같다.(아마도)워낙 유쾌하신 분이고, 피곤에 찌든 대학생한테 넌지시 한마디 건낸거겠지. 아니면 잠깐 웃을일을 만들어주신것 같기도 하고. 이날은 수업 대부분을 선생님 혼자서 시범하셨다. 혹시 나를 신경써주신건가 싶어서 은은하게 고마웠다.


선생님이 던진 말이 단순한 농담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카드를 하나 얻은 것 같았다. 그만둬도 된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내 삶은 초조함

초조함이라. 내 상태를 가장 선명하게 묘사하는 단어를 찾은 것 같다. 나는 일평생을 초조하게 살아왔구나!

큰 깨달음과 함깨 이걸 어떻게 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큰과제를 얻은 것 같기도 하군.


뭐 잘은 모르겠지만,초조해하면 안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한발 전진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불안에 떠는 고3들한테 해줄 그럴 듯한 말이 하나 늘어난 것은 조금 기쁘다.


(멋진 선생님얼굴로) "초조해 하지말자."


물론 "어떻게 초조해 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라고 물으면... "같이 생각해보자."따위의 말 밖에는 할 수 없지만....






초조하면 안된다는 것을 상기하자.

초조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얼마나 그렇냐면,스스로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사실도 흐려진다.(깨닫지 못한다.)그러면 실수하기 마련이고, 실수 할 수 있고, 개선 할 수 있다는 관용적인 생각을 놓치게 된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면, 타인에게도 엄격해지고, 괴팍해진다...(이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다.)


이 뒤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단히 머리아픈 일들이 많지만 길게 나열하지 않겠다.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심란하다.


초조해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건 어렵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마음 속에 한두장의 카드를 품고 주기적으로 떠올려야한다.


-초조해하지 말 것.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일이 얽히고 설켜있어도,절망에 빠지면 안돼

-조바심이 나서 무리하게 서두르면 안 돼.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나가자.


사실 정말 초조할 때는 이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기장이나,화장실 휴지곽옆이나, 수면등 위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놓았다. 인테리어에는 꽤 파괴적이지만, 내 마음은 꽤나 포근하다.





바쁘고,마음이 힘들어지면 내 생각은 좀 극단적으로 흐른다. 밥 안먹고 말지. 밤 새지 뭐.아 몰라. 이런 식으로? 포기는 나쁜거라고 배운 탓인지, 그런 극단적 선택 안에는 나를 버리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있지만,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를 향한 선택은 없었다. 어찌보면 멍청하고, 안쓰럽다.

나를 버리는 선택지들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한다.이게 너무 익숙해서,아주 오래 전에 다른 선택지들이 있다는 사실들을 잊어버린 것 같다.이게 정말 나를 힘들게 한다면,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이나, 절망하면 안된다는 그런 좋은 생각들 말이다.








+ 나도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배운지 얼마 안되서,그 분야로는 좀 초보다. 그래서 대단히 할 말이 많지는 않지만, 친구 중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도망의 스페셜리스트가 있기때문에, 학기만 끝나면 이것저것 물어서 글에 옮기겠다.(도망치지 않은 서로를 칭찬하면서 초밥을 먹을 예정이다.)


+ 좋아하는 만화에서 한 어른이 고등학생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빨래가 잔뜩쌓여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르겠을 때는 발 밑에있는것부터 치우는게 도움될 때가 있어...라는 좀 웃긴 말이긴 하지만, 그 덕분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 오늘 뭘 할 수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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