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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Feb 23. 2017

그냥 雨


누군가는 일이 남아 다시 되돌아갔고 누군가는 몇몇 이들과 가볍게 저녁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집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저녁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다만 겨울비치고는 제법 세차던 빗줄기가, 어둑어둑해지는 이즈음에 와서는 다소 가늘어져 있었다. 아직 완연한 어둠은 내리지 않은 저녁의 경계선을 따라, 가벼운 빗줄기와 함께 이 겨울비 속을 걸어서 집으로 가기로 한다. 



보도블록이 놓인 길에는 제법 많은 웅덩이들이 생겨났고 그 위로 빗줄기가 내리며, 부딪히는 동안, 물웅덩이마다 동그란 파문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었다. 또 웅덩이들이 담아내는 불빛들은 순하게 빗물 속에 담겨있다가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걸음에 작은 소리를 내며 흩어지곤 했다. 지면 위에 담긴 비의 수신호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정직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몇 있었다지만 나쁘지만은 하루였다. 웅덩이로 생겨나는 파문들을 보는 지금의 마음은 분명히 나른하고 가벼운 것들이었다.


느릿느릿 걷는, 간간이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만지기도 하는 이 밤이 좋았다.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 밤이 좋았다. 한 계절이 다시 다른 계절로 옮겨가는 이런 날에는, 밤의 시간들을 통과해나가는 이런 밤에는 휘파람처럼 낮은 소리를 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자주 기울어지고 엇나갔던 저녁들을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조금은 용서해도 될 것 같았다. 느리게 집으로 걸어가는 길, 인생에 이런 하루쯤은, 허락되어도 좋을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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