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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Feb 26. 2017

새벽


비가 내렸다. 새벽, 거리는 조금씩 비에 젖어 있었다. 공기는 다시 한 층 더 서늘함 속으로 몸을 낮춘다. 아직 이 거리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대로변의 소음도, 비틀거리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들, 이제는 접어두겠다. 그리움도 깊어지면, 그믐달마냥 가느다랗게 야위어지고, 발밑에 보이는 어린 기억 하나에도 하루가 종일 저려오는 아픔들은, 곧잘 잘그락- 가슴팍에서 마른 소리들을 내곤 했다. 세상살이, 그 무엇도 만만치가 않더라. 피곤한 일상이 고장 난 복사기처럼 멈춰서는 날에도 날카로운 칼처럼 박혀 드는 무수히 많은 너.

.

.


기억들. 수많은 지층을 가지고 있다. 다시 기억들, 겹겹이 쌓여온 순간들을 읽어나간다. 내게 당신은 손가락 끝으로 읽혀지는 사람.

.

.



아직 이 거리는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깊이 가라앉은 저 길 모퉁이마다 누군가의 잠 못 드는 마음들, 매달려 있을 거다. 팍팍한 하루에 지쳐 구겨진 잠을 자는 젊은 이방인들. 저마다 사막을 품고 이 하루를 건너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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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는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이 길고도 짧은 순간, 말간 햇살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들기 시작하며, 당신의 어지러운 마음속으로 찾아들기 시작하면, 이 어둠들 조금은 가시리라. 아직은 당신의 안부가 궁금한 하루들. 이 하루들 사이에도 햇살 하나가 말갛게 걸리면 좋겠다. 내 마음에 세운 당신을 향한 송신탑 하나. 오늘 하루도 당신에게로 건너갈 인사를 마음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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