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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17. 2017

기억色


해가 저물 무렵, 바다에 닿았다.


파도는, 그리고 바람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커다랗고 위험한 바위들 사이에서 파도는 맨몸으로 부딪히고 부딪히며, 부서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에서 보고 들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가 셔터를 끊었다. 철-----컥, 한 점 불빛조차 희미해 셔터 소리마저 길게 늘어졌다.


오해, 그릇된 시기심과 질투, 남들 위에 서고자 하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진열대 위에 늘어서 있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made in china'가 새겨진 물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사람이 절망이다.'라는 말로 와 닿았던, 이 땅 위에서 두 발 딛고 보냈던 지나간 기억들도 늘어졌다.


문득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자기 비하와 연민 같은 것들로.



철썩-하는 소리와 동시에 얼굴이 얼얼해졌다. 거센 파도였다. 중력을 거스르고 튀어 오른 파도가 얼굴을 때리고 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짧은 사이, 삼각대에 덩그러니 걸려있던 카메라는 무사한지, 서둘러 점검을 한 걸 보면.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약, ‘필요’와 ‘불필요’ 사이에 생각을 놓는다면, 역시나 생각은 ‘불필요’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던 순간에도 무의식이 가진 본능은 눈 앞의 손익을 향해 손을 뻗을 뿐이다. 결국, 내 감정은 현실의 경사진 비탈을 넘지 못한다.



다시 오늘, 그날의 바다는 어떤 색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낮은 구름과 하늘, 수평선 너머 짙어지던 밤의 빛깔을 담은 그 바다가, 위태롭던 바위, 그 날카로움 사이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짙게 물들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날 내가 두고 온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당신이었는지, 치기 어린 마음이었는지, 혹은 음습함으로 덩어리진 어제였는지, 혹은 나의 내일이었는지, 나는 그 무엇도 기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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