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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03. 2017

거리를 걷다 #2


어둠이 적당히 내린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날은 늘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의 온기가 그리웠다. 적당한 무게로 찰랑거리는 아메리카노가, 어쩌다가 마음이 드는 풍경이 나오면 잠시 머물러 서서 가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짙은 향이, 오래도록 마음을 든든하게 했었다.



일상에 묶여 자주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못하는 그런 저녁들이면, 대신 한참을 걷곤 했다. 거리의 소음들이 조금씩 잦아드는, 아직 깊은 밤이 시작되기 전인 저물녘의 시간.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마무리되는,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시작되는 낯선 거리와 골목들을 걸었다.



하나 둘, 간판과 가로등과 건물들의 창에 환하게 불빛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가로등의 불빛은, 단풍처럼 붉어, 종종 사람의 마음을 훔치곤 했다. 가로등 아래서 유난히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는 것은, 노을을 닮은 주황색 저 불빛이 달빛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왔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어둑한 마음들이, 마음 깊숙이 꾸깃꾸깃 숨겨져 있던 기억들이 뒤따르곤 했다.



또 어떤 날은 '오늘은 잠시 쉽니다.'라고 엉성하게 붙여져 있는 가게 앞을 지나쳐가기도 했다.  조금은 삐뚤삐뚤하고 커다랗게 쓰인 글씨를 따라 불이 꺼진 가게는 평일에도 곧잘 사람들로 넘치곤 했다. 왁자하게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들 사이로, 지치고 고단했던 하루들이 찰랑거리며 목울대를 따라 흘러들어가곤 했던, 가느다란 철제 의자 사이로 굴러다니던 애환과 슬픔들도 오늘 하루만은 임시 휴업일 것이다. 



가끔은 기억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돌아서 갈 수 없는 기억들일수록 잊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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