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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푸른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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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06. 2017

귀가


돌아갈 곳을 가슴에 걸고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얼어붙은 겨울날, 빈 들판만 빽빽하게 걸어두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 언저리를 헤매는 내게는, 해가 저물 무렵이면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아직 꽃이 피지 않으면 어떠랴. 봄이 되면 저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연분홍 매화며, 홍매화, 혹은 먼저 빨갛게 물든 동백이며, 어린 민들레며, 치자꽃들이 환히 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크고 무거운 바퀴가 이끄는 대로 정직하게 수고한 하루를 싣고 가는 이의 황혼이, 그 긴 세월들이 자근자근 풀어지는 저녁이면, 그네들의 닳은 관절 사이로 긴 강들이 흘렀고 내 삶들은 여전히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늙으신 증조할머니가 아직은 여물지 않았던 내 동그란 어깨를 토닥였던 날들에는, 내 어린 날들도 달고 긴 잠을 잤다.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던 것들도, 구름과 집 사이에서, 봄이 오는 푸른 잎맥 사이에서 잠을 잤다. 따뜻한 날들이었다.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유년의 날을 걷는, 유난히도 밤하늘이 반짝이는 이런 날은 길게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쓰고 싶었다. 수취인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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