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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07. 2017

광주, 그리고 당신


일이 있어 전남 광주에 다녀왔었던 적이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약속 장소인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을 때 약속 시간까진 아직 한 시간쯤 남아 있었다.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기에 짐은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노트북과 책, 편안한 옷가지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잠시 계절이 건너가는 도중의 광주를 걷기로 했다. 이 도시는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 세련된 건물들과 여전히 익숙한 건물들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녹지들이 같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이 도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여전히 혼재되어 있는 곳. 그 혼재와 공존의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 도시처럼, 당신도 여전히 혼재되어 있는지. 그 어느 날인가의 저녁, 언뜻 들었던 당신의 청소년기와 성장기, 당신이 살아왔던 그 계절들은 늘 내겐 어렵다. 여전히 그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다. 시간의 조각들이란 늘 그렇게 손에 쥐이지 않고 흘러나간다.



그러다 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은 서늘한 계절 때문이기도 했고, 커다란 창문이 마음을 끌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동안 그 온기들로 바깥에서의 냉기를 덥혀주었다. 낯선 타지에서 오롯이 혼자라는 것은, 낯설지만 또한 기분 좋은 서늘함이기도 했다. 우리들에게 아주 잠깐 홀로 있을 수 있음이 허락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특혜. 주변의 다정한 속삭임과 웃음 속에서 그렇게 천천히 가라앉아 갔다. 그렇게 때때로 나는 온전한 섬이 된다.



문득, 이곳은 낮보다 저녁이 더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거리가 그렇듯이- 어둠으로 사람들의 허름함과 상처들이 가려져 더욱 매혹적으로 바뀌듯이, 아마도 이곳도 그러리라. 이미 어둠이 주는 매혹이 기다란 조명을 따라, 선반 위에, 혹은 액자 위에, 가느다란 의자 밑에 고여 있었다. 아마도 짙은 습기로 가득한 밤이면 유난히도 크고 높은 창들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도시의 어둠들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어둠이란 원래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기 마련이니. 가볍게 맥주를 하고 싶었으나, 훗날로 미뤄놓고 일어섰다. 언젠가 다시 오고 싶은 곳 하나쯤 남겨놓는 것도 여행의 작은 기쁨일 테니까.


당신과 함께 두꺼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볕이 좋은 창가이거나 혹은 거리의 불빛이 유난히 밝은 저녁이거나 당신이 내 어깨 위에 작은 미소를 드리운 그 어느 때나 내게는 아름다운 시간일 것이다. 그렇게 내 세상은 온통 당신으로 가득하다.



아홉 시간이 넘는 긴 회의와 소규모 토의와 연수를 끝내고 나면, 나는 낯선 호텔의 침대 위에서 정신없이 곤한 잠을 청할 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조식 후 짧은 강의를 듣고 다시 긴 시간을 차에 몸을 실어야 할 것이다. 혹은 돌아오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안건들을 떠올리고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정리를 할 것이다. 내 하루란 이런 것이다. 한때는 일중독이라는 말을 곧잘 들어왔을 정도로 종종 바쁘고 분주하다. 그러나 동시에 잠시 멈춰 설 때마다 나는 당신을 떠올린다. 이곳 광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투자했으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거리를 걸었고 당신을 떠올렸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었으며, 또한 기억하는 당신의 어린 날들을 마주했다. 그러므로 이제 이 ‘광주’라는 도시는 내게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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