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을 본다. 시들은 파편처럼, SNS 어디에도 흩어져 있다. 내 글의 근원 역시 시다. 나는 종종 아름다운 산문시들을 쓰고 싶었다. 나무와 구름과 하늘과 거리 사이에 집을 짓는, 길고도 부드럽고 다정한 호흡의 아가미들을 갖고 싶었다. 내 글의 본질은 위로이고 싶었다. 냉철하고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보다는, 이슬도 풀잎에 세들어 산다는 시인처럼*,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눈이 맑은 사람이, 그런 시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가 하나의 세상이듯, 피어오르는 꽃대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쓰는 시는 대기 중에 푸른 잎맥의 집을 짓는, 고요하고 정직한 시였으면 했다. 그렇게 나도 무성한 회향목 잎을 지닌 초록의 나무이고 싶었다. 내 미천함을 걷어내고 가장 깊은 곳에 숨 쉬는 맑은 무엇이고 싶었다.
어쩌면, 기형도 같은 시인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별다른 말이 없더라도 담담한 시인의 어투 속에서, 눈물이 날 것처럼 절절한 아픔들이 저도 모르게 배여 나오는 시인이었으면 했다. 아픔과 슬픔은 전염되기 마련이라, 내 아픔들이 네게로 건너와, 서로 공명하며 녹아들어 갈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아서라, 겨우 스물아홉에 요절한 시인처럼, 가슴속의 절절함을 꺼내들 내적인 힘을 지닌 이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들어다 놨다 하는, 눈부시게 빛나는 언어의 집을 짓는 이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시는, 타고난 재능을 꽃피우는 일. 그래, 그래서였다, 시를 놓아버린 것은. 정확히는 감히, 시를 쓸 수가 없게 된 것은. 내 재능 없음을, 타인의 뛰어난 시에서 발견하는 동안, 다작의 노력만으로는 닿지 않는 그 길에, 열패감은 짙었고, 내 얕음으로는 희고 단단한 언어의 집을 지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시를, 그 아름다운 언어를 사랑했다. 시는 여전히, 내면 깊숙이 들어와, 우리를 흔드는 것, 그 찬란함을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의성어를, 유달리, 좋아했었다. 기쁘고 슬펐던 날들에 숨겨져 있던 모든 소리들을 사랑했다. 사각사각, 저걱저걱, 잘박잘박, 찰랑찰랑, 덜컹덜컹, 잘그락, 툭, 툭툭, 모든 감정들은 은밀한 수신호를 지니고 있었다. 소리마다 조금씩 지문(指紋)의 질량들이 달랐던 그것들은, 때때로 심장 속으로, 서걱-거리는 듯한, 서늘한 소리로 떨어져 내리기도 했으며, 때때로 길다란 문장으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온전하게 우리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내가 당신 앞에서, 자박자박, 오래 숨죽인 그늘 소리를 내며, 작아지듯이.
어린 날에는, 산문에는 산문의, 시에는 시의 문법이, 그 미묘한 듯 서로 다른 뚜렷한 문법들이 좋았다. 때때로 소설과 시 사이의 경계선에 걸쳐진 듯한 아름다운 수필들을 읽는 것도 좋았다. 밤을 새워, 책장을 넘기는 소리들은, 그래서 좋았다. 세상의 수많은 소리들이 내게로 하나 둘 모여 와 깊은 밤들을 같이 새우곤 했다.
사실 시는 그 어디에서나 숨어 있었다. 몇십 년 된 유행가 속에서도, TV 속 스쳐가는 광고 문구 중에도, 영화 제목에도, 하루하루 조금씩 작아져가는 바람의 어깨 그 너머에도, 거리로 내려와 고이던 햇살 속에도, 찰칵, 가벼운 소리를 내며 카메라에 담기던 풍경들에도, 문득 창문가로 닿는 기억들에도, 노을처럼 두 볼을 붉히며 고백해오던 어린 눈동자에도, 당신이, 당신을 일으키던, 그 밤에도, 시는 있었다. 많은 것들이, 사실은, 다 시였다.
*<이슬도 풀잎에 세들어 산다>, 황영선 시인의 시집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