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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26. 2017

아직 오지 못한 봄


강물은 제법 불어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래 내리지 않던 비로 많이 가물어져 있어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듯한 여린 모습에, 종일 애잔함이 쓴 커피처럼 입 안에 맴돌았더랬다. 그렇게 강물이 가늘어져 있던 3월의 어느 날, 새벽에 급히 걸려온 부고(訃告)는 그날 새벽의 낮게 깔린 어스름을 잘게 흔들던 전화벨만큼이나 다급했고, 또한 서글펐다.      


그와 나는 한 동안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늘 다정한 웃음을 지닌 선량한 이였고, 나는 그를 좋은 인생 선배, 그리고 아내에게 무척이나 자상한 남편으로, 딸바보의 순둥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이제 불혹을 넘어섰다지만 여전히 세상에 자리 잡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던 남동생 뒤에서 묵묵히 한 뭉치의 지폐와 맏이로서 속 깊은 위로를 함께 건넸고, 소싯적에 잘 나가던 미니스커트의 화려했던 어머니와 제약회사의 상무였던 아버지의 상심을 위로했으며, 자신의 자동차보다 부모님의 오래된 자동차를 먼저 바꿔줄 줄 아는 유달리 효심이 깊었던 효자이기도 했다.      


그에게 형제라곤 남동생 하나밖에는 없었는데, 유난히 체격이 크고 서글서글하게 잘 생겼던 동생은 성격도 화통하고 시원시원했더랬다. 지금은 TV에서 잘 나가는 모 탤런트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호언장담하던 동생은 곧잘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댔고, 곧 모든 사업에 실패했다. 게다가 도중에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까지 떠났다가 불과 몇 년 전에야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것은 가세(家勢)와도 이어져, 한때 서울의 노른자위 땅에서 정원을 가진 호화로운 주택에 살던 그의 부모는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로, 다시 서울 변두리로, 그리고 종내는 서울을 벗어난 근교의 작은 평형의 아파트로까지 밀려나야 했다.       


이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가족들을 기꺼이 짊어졌던 것은, 다름 아닌 맏아들인 그였다. 그는 성실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결혼을 했고, 은퇴한 부모를 부양했고, 철없던 남동생을 챙겼다. 익숙할만하면 직장을 박차고 나오던 동생을 타이르는 것도 그였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동생에게 직장을 끊임없이 추천해주던 것도 그였다. 또한 딸만 둘이었던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공부를 잘하는 큰 아이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성격이 활발했던 둘째 아이 모두 지극히 사랑했고, 너무나 아꼈다. 몇 년 전 가족모임에서 봤던 그가 얼마나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보이던지 눈에 선했다. 그는 아이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며 어딜 가든지- 맛난 것을 먹던지, 영화관을 가던지 늘 딸아이와 함께 했다.     


그런 그가 여느 때와 같이 평일 새벽 직장에 가야 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갑자기 심장에 마비가 와 쓰러져 삼성병원 응급실로 갔고, 채 손 쓰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둬 영안실에 안치되었다는 이야기에 망연자실해진 것은, 아직 그가 40대의 성실한 가장이요, 진실로 온화하고 선량한 사람이요, 그의 막내딸이 아직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 그의 부모의 비통함과 탄식들이 떠올랐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급히,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내기에, 그는 아직 세상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의 삶은 타인을 향한 호의로 가득했지만, 정작 그 자신에게는 책임으로 가득 찼던 이번 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짐 지기만 했었다. 분명히 그는 조금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기쁘게 이 하루들을 누릴 수 있어야 했다. 어린 시절 그는 분명 내게는 조금 엄한 형님이기도 했지만, 어른께는 예의 바르던 소년이었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잘 챙겨줄 줄 아는 마음의 폭이 넓은 이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생에 아직 봄날이 오지 않았다고 늘 생각했다. 그의 생은 조금 더 따뜻하고 환한 봄날을 맞아 더 피어나야 했다.      


사각의 액자틀 사이로 갇혀 있는 그의 시간들은, 다시는 우리에게로 오지 못한다. 낯선 상복 차림의 형수님도, 아직은 작디작은 어깨와 곧은 허리를 지닌, 고작 십대에 불과한 그의 딸들도, 그네들의 인생에 불시에 찾아온 이 낯선 침입자와 같은 죽음 앞에서 한동안 울고 지쳐 쪽잠에 빠져들었다가, 제대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가, 다시, 울다가 곧 서러움에 잦아들곤 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 멀고 먼 시간이 지난 후에, 갑작스레, 어느 순간 그를 잊고 지냈다는 사실에, 다시 서럽게 울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네 삶에 커다란 불청객이기도 한 ‘죽음’에 정중한 절차를 갖춰줄 수 있다는 것은, 그와의 시간에 추도를 보낼 수 있도록, 망자를 영원히 지상으로부터 떠나보낼 수 있도록,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위로와 추도의 시간일 것이다. 


봄이 오기 직전에 얼어붙은 꽃은, 다시는 피어나지 못하는 법이라는 얘기를 어릴 때 듣곤 했다. 이제는 제법 따스한 봄 속을 걷는 지금, 봄이 오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매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툭 꺾여버린 것들이, 갑작스레 비보를 전하는 것들이, 참으로 아프다. 그래서 겨울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것들이 다 붉은 것일까, 동백의 붉음이, 남도에 피어나기 시작한다는 홍매화들이, 몹시도 아프게 각인되는 것은, 남는 자들이 나누어져야 하는 슬픔일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는, 모두가, 죽은 자에게 하나씩 부채를 지닌 자들이다. 그래서 차가운 날이면 저려오곤 하는 저기 어디쯤에, 우리는 누구나, 물밑에 깊이 잠든 추억을 길어올린다.


가슴에 자식을 품은 늙은 아비에게도, 아직은 아버지의 품이 그립고, 남아있는 그 긴 시간 동안 ‘부재’를 등 언저리 어딘가에 매달고 살아가야 할 어린 소녀에게도, 이 봄이 너무 잔인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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