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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Apr 03. 2017

노란 안부를 물으며


#1.

이른 아침, 짙은 물안개 속 노란 개나리들이 반갑다. 저 꽃들은 아직 초록의 잎들에 잠식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에 무더기무더기 피어나고, 금세 초록의 잎사귀들에게 잠식당하는 어린 꽃들. 사실 나는 한없이 해사하고 어린 저 꽃들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몇 겹 시간을 견디며 결국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는 것들을 더 사랑했다. 이를테면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 충북 보은의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 같은. 오랫동안 마당을 지키며, 속리산 깊은 산자락 아래서 계절마다 빛나던, 자랑처럼 흔들리던 무성한 잎사귀들을 사랑했다. 그 크고 넓은 그늘들을 사랑했다. 여름날의 서늘함을, 가을날의 눈부심을, 잎과 꽃이 떨어진 이후에도 겨울에도 변함없던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

      

혹은 천일홍처럼 붉고 아름다운 꽃들을- 향기가 오래 가는 것들을 사랑했다. 정확히는 목백일홍, 배롱나무라 불리던 아름다운 나무가 유서 깊은 사찰의 고즈넉함 속에서 꽃을 피울 때, 가지에 맺힌 빗방울들 속에서도 처연히 피어올린 붉은 연심들은 곧잘 나를 흔들곤 했다. 그렇게 쉬이 변치 않는 마음이라 여긴, 계절이 바뀔수록 더 깊어져 가는 것들을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개나리는 여리고 작고 가늘고 때때로 너무 가벼웠다. 종종 어린 것들을 노란 병아리나 개나리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 이미지의 일치성이란 놀라울 정도였다. 노오란 빛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그토록 어린 것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동일어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종종걸음, 혹은 보드라운 살결의 아가를 닮은 귀여운 봄꽃. 

거기에는 목련과 같은 느림과 무거움, 기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욱이 가까이서 꽃잎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기쁨을 얻기엔, 겹겹이 쌓인 동백이나 옅은 분홍빛의 매화나 벚꽃과 같은 아름다움도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개나리는 해사하지만 그만큼의 가벼움도 묻어있는 작은 꽃들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나리를 보면 여전히 반갑다. 오늘처럼 안개가 짙은 날일수록, 저 환한 빛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봄빛을 지핀다. 햇살이 내리비치는 버스 창가, 지친 모습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모퉁이를 돌아갈 때, 가장 먼저 시야를 환하게 만들며 피어나 있는 저 꽃 무더기들은, 작고 어여쁜 봄빛을 닮았다. 산속에서 드문드문 봄꽃을 피워내는 생강나무 역시 같은 노란 꽃잎을 달고 있지만, 앙상한 가지 끝에 조금씩 달려있는 그 노란 꽃은 왠지 외롭다. 그에 비해 무리지어 피어나는 개나리들은 구겨짐 없이 환하다. 한껏 껴안아보고 싶은 봄볕을 닮은 꽃. 그래서 어떤 시인은 “빛의 폭포”라고 표현했고, 이해인 수녀는 “샛노란 눈웃음 꽃”이라고 말했나 보다.

     

아, 저기, 어린 생명력들이 담벼락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햇살을 닮은 노란 꽃잎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꽃대들, 바람 사이마다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그때마다 무성한 줄기들은 낭창낭창하고, 봄은 그만큼 또 나른해진다.


마냥 여릴 것 같은 개나리가 사실은 몹시도 생명력이 강인한 나무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봄이면 일제히 피어났다가, 겨울이면 무성한 잎사귀를 모두 떨어트린 채 황량한 모습을 보이던 그 꽃들이, 마치 한해살이 같은 느낌의 개나리들이 사실은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란다. 그것도 영하 20도 이하의 겨울마저 견디는 강인한 나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산천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이 꽃은 학명부터가 [Forsythia koreana]. 즉,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특산종이었단다. 그러면서도 그늘이나 햇살이 잘 드는 언덕이나 어디나 가리지 않고 추위나 더위, 혹은 목마름과 습기에도 잘 견디고 병충해와 공해마저도 잘 견뎌내어, 산지나 들녘에서뿐만 아니라, 도시나 공장지대에서도 토양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나, 희뿌연 공기 속에서도 제 빛을 낸다.

어디 그 뿐이랴,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놓기만 해도 토양을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겉보기와 달리 강인한 뿌리들은 금방 군락을 지어 봄이면 화사하게 피어나, 집 울타리로도 많이들 심었단다. 봄이면 꽃잎을 따다 꽃술을 담갔다는, 가을이면 드물게 맺히는 열매로 술을 담갔다는 이 꽃들. 봄이면 올망졸망 피어나서는, 두런두런 들려오던 지어미와 지아비의 이야기 소리에, 어린 새처럼 지저귀던 아가들 소리에 아마도 한참을 귀 기울였으리라. 몰랐었다, 이렇게 어여쁜 꽃인 줄은 정말이지 미처 알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사실 개나리가 ‘나무’라는 사실부터가 놀라웠다. 겨울이 지나면 해마다 환히 꽃망울을 터트리며 피어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당연한 사실이 ‘나무’라는 인식과 이어지지 않았다. 한해살이, 덧없음과 같은 고정관념들이 워낙 단단했었기에, 나는 그네들이 사실은 매서운 겨울과 도시의 매연과 황사 속에서도 버티고 피어난 꽃들이었음을 잊고, 그저 무심하게 걸음들을 바쁘게 재촉하곤 했었다. 흔하다고 생각해서 스쳐지나감이 더 가벼웠으리라. 어디든, 그저 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들이라, 생각했었으니. 귀히 여기지 않았으므로, 지나침 역시 빨랐으리라.



#2. 

이미 차고 넘쳐서 귀함을 잊어버린 것들이, 개나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지 않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4월, 옷깃을 여민다.


어느 해 4월, 전국이 노란 빛으로 출렁였었다. 노란 리본이 가슴마다 달리었고,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이 아픈 노래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아파했었다. 누군가는 벽화로 남겼고, 누군가의 가슴에는 아직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벌써 3번의 봄이 흘렀다. 다시 4월이 왔다. 그리고 깊고 차가운 바다에서, 이제 녹이 슬고 곳곳에 구멍이 난 채, 앙상해진 선체가 다시 이 바다 위로 끌어올려졌다. 저 차가운 배 안에서, 작고 어린 노오란 꽃들이 졌다.


빛이 곱고, 따스했던 봄날이었다. 어린 꽃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경건해질 필요가 있다.



#3.

희망, 기대, 그리고 깊은 정.


개나리의 꽃말. 누군가는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라고 했던가. 이 노오란 슬픔들, 이제는, 4월이면, 이 산하와 강천을 뒤덮는, 환하디환한 새 희망으로 피어나길.




* 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 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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