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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니니 Apr 04. 2022

01. 이제 어떡하지?

캐나다 첫날.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눈앞에 보인다.

아직은 잠에서 덜 깨어 몽롱한 상태였지만 피부에 닿는 침대의 품 또한 낯설었다. 고개를 돌려 옆 자리를 보니 이제야 익숙한 아내가 보인다. 새록새록 잠자는 아내의 모습을 물끄럼이 바라보다가 그녀가 깰까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온다. 침대는 더럽게 높았고 그 침대에서 떨어지듯 듯 내려온 발바닥에는 카펫이 느껴진다. 폭신폭신한 카펫은 겨울에 포근함을 주겠지만 6월인 지금은 포근함보다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얀 벽에 하얀 가구가 들어있는 방 한쪽에는 암막커튼이 쳐 저 있는 꽤 큰 창문이 침대 옆으로 있다. 빛이 새어 들어와 아내는 깨울까 서둘러 커튼 뒤로 숨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 

미세먼지로 뿌연, 회색 빛 서울의 하늘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새 파란 하늘. 

내가 본 이곳의 첫 번째 광경이었다. 그제야 비롯 '그래, 난 캐나다에 왔어!'라고 실감이 났다. 전날 늦은 저녁에 도착하기도 했고, 도착하자마자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창 밖을 볼 생각을 못했다. 처음으로 이런 장시간 비행을 한 우리 부부는 누군가 "창 밖을 봐!"라고 해도 보지 않고 침대에 널브러졌을 것이다.

 창 반대편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건식 화장실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바닥에 에어컨이 있다는 것이다. '청소하긴 편하겠네.'라는 생각을 하고 더 안쪽을 보았다. 욕조는 없고 샤워 부스가 완벽하게 물을 차단하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는 하우스 셰어 하는 파트너들의 출근 소리가 들린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으로 집주인의 남동생과 같이 일하는 여성의 소리였다. 참고로 둘은 연인도 아니고 나중에는 싸우며 앙숙으로 관계는 끝이 난다. 이들에 대해서 쓸 일이 없는 것 같아서 TMI 해봤다.  우리 방 바로 밑에 있는 차고 열리는 소리가 난다. 캐나다의 하우스는 목조건물이어서 작은 울림도 크게 느껴졌다. 육중한 것 같은 차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 아내는 잘 자고 있다. 모두 일하러 떠났다. 아무도 없는 1층으로 내려가 전날 보지 못한 집을 구경한다. 1층은 카펫이 아닌 나무로 바닥이 되어있었다. 신발장은 따로 없었고 한국인들이 살아서 그런지 코일 매트로 현관을 구별해 놓았다. 사람들은 그 코일 매트 위로 신발을 벗어 정리해두었다. 뒷 창문으로는 작은 호수가 보였고, 그 호수에는 억새가 흩날리고 있었고, 거위들이 유유자적 수영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6-7월의 거위들은 새끼 때문에 예민해서 사람을 꽤나 잘 문다고 했다. 길 가다가 마주치면 피해 가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줬는데 그동안 귀여운 거위들이 육식동물인 것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주방에는 한국에서 우리가 사용하던 것과 동일한 밥솥이 있었고 흔히 말하는 '도란스(변압기)'가 자리 잡고서 110v를 220v로 변환시켜주고 있었다.

방 한켠에 있는 창문을 통해 우리의 공간은 햇살로 가득했다. 그래, 이게 사는거지.


 사람들이 출근을 하자 이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됐다. 그곳의 공기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아니 조용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없는 소리. 소음이 없는 동네였다. 캐나다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달리는 오토바이도 없었고, 어디서 들리는지 모르는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없었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14시간 비행과 비자를 위한 인터뷰, 폭풍우 때문에 흔들리던 비행기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여정과 시차 적응을 하며 피로가 한 번에 쏟아졌나 보다. 책상에서 의자를 꺼내 몸을 뒤로 기울이고 앉았다. 

 '이제 어떡하지?'


 호기롭게 한국의 사람들과 삶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오긴 왔는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직장도 학교도 없이 일단 캐나다에 왔다.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비자 인터뷰 때 캐나다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너는 학생이 아니야! 그렇다고 근로자도 아니야! 넌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어!". 허리에 권총을 찬 나보다 덩치 큰 그 사람은 내가 서있던 곳보다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나를 내려다보며 강압적인 톤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주눅 들었고 기억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울 대답했다. 

"....y..es..."

적어도 나에겐 매달려보고, 사정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트북을 켜고 카톡을 켜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하늘이 예쁘다고 이야길 해본다. 조용하다고 너무 좋다고 이야기한다. 안부를 전하고 이곳과 그곳에 시차에 대해서 이야길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자러 갔다. 혼자 남은 나는 포털 사이트를 옮겨 다녀보지만 이 또한 재미가 없어 곧 노트북을 덮었다.


'이제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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