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니니 May 16. 2022

09 도둑질도 해 본 놈이 잘한다더니

나는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여유로운 시간들이다. 사람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것도 할것이 없는 지금이 나는 여유롭다. 누군가는 무료하고 심심하다고 할 수 있으나 나는 확실하게 "여유"롭다. 약 10년 동안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드디어 누려보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내 안에 가끔 조바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조바심은 한국에 있던 나에게는 잘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물론 일을 하며 서둘러해야 되는 촉박함은 있었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조바심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나는 남들보다 부유하지 않았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도 없었다. 그렇다고 빠르게 성장하지도 않았고 성공을 향해 달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조바심이 없었다. 타인과 내 삶을 비교하지 않았으며 타인의 성공에 진심 어린 기쁨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다. 이런 나이지만 시간이 많아 지자 없던 조바심이 생겼다. 


'이렇게 쉬기만 해도 될까?'




 아직은  시차 적응의 문제로 캐나다 시간으로 일찍 일어나고 있다. 일찍 일어나지만 하우스 메이트들이 모두 출근할 때까지 방 안에 숨어 있다 그들이 모두 출근을 하면 방 밖으로 나와서 집 안을 돌아다닌다. 사람들이 없을 때 방 문을 열어 밤새 갇혀있던 공기도 환기를 시키고, 때론 청소와 요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책도 읽고 커피를 마셔도 시간은 3시 언저리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하늘 한 번 볼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다. 태양이 떴다는 것을 인지만 했을 뿐 일과시간에 태양을 보며 봄 날씨를 만끽하는 사치스러운 시간은 없었다. 어두컴컴한 공장 한 구석 내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계속 일만 했다. 해 뜬 것보다 달뜨는 것을 더 많이 봤었는데 해가 떠 있는 지금 나는 할 것이 없다.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먹고 늦게까지 잠을 자자니 돈이 없다. 무엇을 배워보기엔 백수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뭐든 안 하던 것을 하기 위한 노력이 이렇게 힘이 드나 보다. 도둑질도 해 본 사람이 잘한다고 하더니 쉬는 것도 똑같았다. 안 쉬고 일만 하던 사람이 쉬려니까 뭔가 어색하다. 나는 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나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알려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부모세대의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당연한 사상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고 했다. 엄마의 이런 교육에 나는 수긍하는 척하였으나 이 말은 언제나 잔인하게 들렸다. 나는 일하지 않아도 먹고는 싶은 게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왜 나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일까. 나는 조금 일하고 많이 벌고 싶고, 힘든 일은 타인이 해줬으면 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욱 심하게 빈둥빈둥거리고 싶었다. 내가 빈둥거리면서 더욱 잘 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성인이 된 뒤로 나의 삶은 그렇게 녹룩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시험을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과제를 위해서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웠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8천 원짜리 찌개에 2500원짜리 소주를 들이키며 밤을 새웠다. 취업 한 이후엔 매일매일 야근을 하며 살았다. 나는 엄마의 말처럼 열심히 살았는데 내 노력만큼 나는 부유하지 않았다. 매일 밤 야근을 하고 쉬는 날 없이 노동하며 부단히 노력하고 살아서 겨우 한 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것은 틀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노동의 신성함은 나의 건강, 생명과 가족을 버리고 얻어야 되는 (누군가의) 영광의 훈장이었다. 뼈와 살을 깎는 고통으로 노동을 할수록 나는 잃는 것이 더 많았다. 형편이 좋아지지도 않았고, 부가 축적되지도 않았다.

내가 얻은 결론은 노동은 신성하지 않다.

 노동은 가치 있고 필수적인 행위이지만, 노동하지 않아도 밥은 먹을 권리가 우리에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나는 쉬는 것이 적성에 맞는 편이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맞았다. 가끔은 조바심이 생기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오히려 격렬하게 더욱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하루 종일 집에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아깝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밖에 나가고 있고 삶의 반경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 종종 느끼는 조바심은 옛 습성이 이곳까지 따라온 것뿐이다. 매일매일 운동을 하던 사람은 은퇴를 했다고 하루아침에 운동을 잊지 못하듯, 지금 나는 단지 옛날의 습성을 잊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연습하고 단련하는 건 노는 방법이다. 잘 노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놀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반대로 나중에는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혼자만의 행복 회로를 돌려본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 노는 사람이 될 거다. 걱정 없는 백수킹! 그것이 내 목표다.

매거진의 이전글 08 횡단보도가 어디 있는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