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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니니 Jun 07. 2022

12 거위의 습격

 캐나다 위니펙 남부의 우리 집, 우리 집이 있는 우리 마을은 정말 자연친화적이고 좋다. 아내는 좀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정말 좋고 만족스럽다. 아내는 알에서 부화하듯 요즘은 집 밖으로 매일 나와 함께 조금씩 멀리 나가며 생활 반경을 넓히고 있다. 캐나다에 온 지 꽤 되었지만 아내 혼자 집 밖으로 나간 적은 아직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러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여름의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면 몇몇 집들이 크고 작은 호수를 하나씩 끼고 있는데 이 호수마다 거위들이 유유자적 수영을 즐기고 있다. 한국에 살 때는 거위를 보기도 힘들었고, 경기도 일산에서 호수나 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 일산 호수공원에 간다던지 경기도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가야지만 했다. 이렇게 야생동물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비둘기 이외엔 없었다. 거위들이 이렇게나 많아서 캐나다 구스다운이 유명한가 보다. 어미 거위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데 때론 인도를 점령하기도 하고 반대로 차도를 점령하기도 한다. 물론 거위들도 살기 위해선 차를 조심해야 되는 것을 알고 있어서 주로 인도를 점령하고 있다.

 이 시기에 어미 거위는 정말 조심해야 된다. 새끼들과 함께 있는 어미는 주변을 잔뜩 경계하고 있어서 심기를 건드렸다간 물리기 십상이다. 다행스럽게 아직까진 거위한테 물린 적은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거위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을 보면 꽤나 아프고,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 시골길을 다니다 보면 어느 마을에나 개조심이라는 큰 표지판과 함께 성격이 포악한 지랄견들이 있는데 캐나다는 그런 개 대신 포악한 거위가 길을 활보하는 느낌이다.

 어느 날, 모든 문제가 그렇듯 예상하지 못했던 날, 예상 못했던 시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아내와 카페를 가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거위들이 인도를 점령하고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잔뜩 겁을 먹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얼마나 지났을까(고민한 시간은 1-2분이었을 것 같다.), 이대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어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냥.. 지나 가자!"

 아내는 나를 불안한 듯 바라보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 순간 뒤에서 따릉따릉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자전거였다. 그는 마치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려는 듯 당당하게 달려왔다. 홍해를 가르려는 모세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이랬을까?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서 희망의 빛이 보이는듯했다. 그가 잘 지나간다면 우리도 잘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길을 비켜준 우리에게 그는 멈추지도 않고 "땡큐"라는 인사를 남기고 앞서갔다. 새끼오리들이 자전거를 본 후 바쁘게 걸음을 옮겨 인도의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어미는 미동도 없이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거위의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인지, 어떤 감정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그의 다리를 공격했다.

"아우치!"

 딱! 하는 부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놀람과 아픔의 비명이 내질러졌다. 이 비명은 우리에게 경고라도 하는 선견자의 경험 같은 모습이었다. 귀로 들어온 그의 비명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의 무서움과 함께 자리 잡았다. 무서웠다. 지나가자고 했던 나의 용맹함은 사라져버렸다.

"... 갈 거야?"

".......... 가야지... 가야지..."
 하지만 우린 멈출 수 없는걸... 이곳에서 돌아가면 우리가 갈 곳은 집 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여기까지 걸어서 왔는데...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설 수도 없었다. 매번 거위를 만날 때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에게도 거위가 인도 위에 있어도 걸어갈 수 있다는 성공의 경험이 필요했다. 승리의 경험이 필요했다. 대신 우리는 차도로 내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거위와 가까워졌다. 우리가 차도에 있어서 일까 새끼들은 다시 인도로 내려왔다. 

'거위 새끼들아! 그곳은 우리가 지나다녀야 되는 곳이야! 제바알 비켜!!'

 속으로 소리치고 있었으나 캐나다 거위가 한글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하지만 겉으론 당당하게 개척자의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거위 바로 옆을 지나게 됐다. 멈추지 않고 한 걸음, 절대 놀라지 않게 하며 또 한걸음. 고작 거위 따위한테 이렇게 겁내 하는 우리가 웃겼지만 우린 아직 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다치면 안 되는 이방인이다.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쫄아서 오줌이 마려운 것 같았다. 그때 거위와 눈이 마주쳤다. 거위는 빤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흰자 없이 검은 자로 가득 찬 거위의 눈 빛은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거위의 눈알은 공포영화의 한 부분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빤히 거위를 바라보며 나에게 달려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우리는 거위를 피해 다시 인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면 별 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정말 무서웠던 경험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거위가 너무 커서 진짜 무서웠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달리기를 하러 집 뒤에 있는 호숫길로 들어섰다. 여전히 거위들은 수영을 하고 있었고, 세상은 조용했다. 달리기를 하는데 거위 똥이 보였다. 하나, 둘, 세, 넷, 한 번에 셋, 한 번에 여덟... 그러더니 길이 모두 거위 똥으로 가득해서 피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길 위에 거위들이 똥을 싸는 건 알 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길이 모두 똥 밭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달리기는 포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호수 코스는 이날 이후로 달리지 않았다...


와... 이 거위들이 이렇게도 공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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