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무룩 안경
3-1. 왜 요즘따라 아무것도 재미가 없을까요?
“대부분의 활동에 대한 현저한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 DSM-5-TR, 주요우울장애 진단 기준 중
잠시 일상을 벗어나 선글라스를 끼고 떠날 휴가를 계획하다 보면 저절로 미소가 번지곤 합니다.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알록달록한 색안경은 멋진 추억을 선물해 주죠. 그런데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이 색안경을 계속 쓰고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흑백 영화, 회색 식탁, 검은 하늘... 한 가지 색으로만 바라보는 하루는 왠지 예전처럼 즐겁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마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흔히 ‘우울한 사람은 원래 조용하고 웃음이 적겠지’ 하고 오해하지만,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들은 언젠가 좋아하는 것들을 품에 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울증이 찾아온 뒤로는 “예전엔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아무 감흥이 없어요”라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곤 하죠.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anhedonia)은 우울증 환자의 약 70% 내외에서 보고되는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무쾌감이 심할수록 전체 우울 증상도 깊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하루 종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과 함께 주요우울장애 진단의 핵심 증상으로 구분됩니다. 우울한 것도 서러운데 왜 흥미까지 사라질까요? 뇌과학에서는 이를 보상회로의 이상으로 설명합니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도파민 터진다!”라고 말하듯, 도파민은 기대와 보상을 매개해 동기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우울증에서는 도파민 활동이 줄고 보상회로가 둔화돼, 평소 즐겁던 일들도 시들해질 수 있습니다.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죠. 심리학적으로 보면 슬픔은 상실이나 좌절을 감지해 잠시 속도를 늦추고 목표를 재조정하게 돕는 감정입니다. 위험을 줄이려 외부 자극에 덜 반응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죠. 그런 면에서 우울이가 지친 마음에 씌우는 ‘시무룩 안경’은 일종의 방어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이 방어막이 마음에 너무 오래 머물러 일상의 색을 모조리 빼앗아 갈 때입니다. 혹시 좋아했던 음식도, 친구와의 만남도, 주말에 떠나던 여행도, 즐겨 듣던 음악도 점점 멀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어느새 소중했던 것들을 뒤로한 채 빛바랜 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있다면, 이는 일시적 기분 변화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어떨까요? 마음에 씌워진 시무룩 안경을 벗고, 다시금 소중한 것들에 색을 입혀 갈 당신의 내일을 응원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마음의 여섯 얼굴
우울할 땐 뇌과학
기분장애 교과서 2판
Anhedonia and Depressive Disorders, Clin Psychopharmacol Neurosci. 2023 Aug 31;21(3):401–409. doi: 10.9758/cpn.23.1086
The characteristics of anhedonia in depression: a review from a clinically oriented perspective Transl Psychiatry. 2025 Mar 21;15:90. doi: 10.1038/s41398-025-03310-w
Striatal Dopamine in Anhedonia: A Simultaneous [11C]Raclopride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and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Investigation Psychiatry Res Neuroimaging. Author manuscript; available in PMC: 2024 Aug 1.
The neuroscience of sadness: A multidisciplinary synthesis and collaborative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