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나만 홀로 남더라도 기꺼이 살아간다던 사람조차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친구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벌써 1년. 시간을 헤아리다보면 금방 새삼스러워진다.
사실 거의 매일 카톡하고 가끔 영상통화해서 그렇게 오래 헤어진 기분은 아닌데 묘하게 낯설다. 오랜 만에 얼굴을 맞대니 제법 많이 변했다. 풍기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지구에 나만 홀로 남더라도 나름 기쁘게 살아가리라고...쓸쓸함과 외로움을 노래하자면 늘 담담하게 말하던 친구였다. 또래에 비해 지혜롭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고 외동아이로 커서 그럴 수도 있다. 예술하는 부모님을 둔 까닭에 혼자서도 즐겁게 유희하는 법을 일찍이 터득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매사에 침착하고 쿨하게 임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친구가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애착을 토로한다. '그 사람'의 표면과 밑바닥을 오직 '나'만 제대로 봐줄 수 있다는 오만과 편견을 내게 털어 놓는다. 타인이 내 인생을 깊이 비집고 들어온 체험을 쩔쩔매며 고백한다. 사나이 콧등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얼마만에 보는 건지.
풍습이 다르고 말도 낯선 동네에서 이방인처럼 살다보면, 다들 심장이 얼어붙는 외로움에 사로 잡히나보다. 교환학생이든 유학이든 자취든.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의 심연에 풍덩 적셔지나보다. 아직 나에겐 그런 경험이 없어서 단지 추측만 할 따름이다. 섣부른 추측에 머무르는 게 이다지도 한스러운 까닭은 어째서일까.
친구가 온몸을 비틀며 견뎌내는 정서가 나로서는 정확히 1년 전에 통과했던 것과 같은 질감의 정서이기 때문에 어깨를 크게 감싸주는 것 말고는 해줄 게 없었다. 지금 당장은 나쁘지만 결국엔 좋아질 거다. 자기 영혼에 자문하는 시간을 갖고 심신을 위로할 공간을 충분히 떠돈 끝에 너는 전에 쓰지 않던 새로운 문법을 발견 할거야. 나와 완전히 같은 말을 쓰진 않겠지만, 너도 결국 새로운 언어를 갖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왜 굳이 언어를 쓸까. 사랑하는데 실패한 사람만이 언어를 새로 획득한다는 걸 감안하면 결국 사랑하기 위해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걸테다. 사랑하기 위해서 언어를 쓴다는 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아닌 것과 이어지기link 위해서 사람은 언어를 쓰게 된다고 갈무리 해두면 어젯밤의 긴 대화를 기록하는데 적당한 매듭이 되겠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지구에 나만 홀로 남더라도 기꺼이 살아간다던 사람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