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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 시킬 것

혼자 간직하려니 영 진도가 안 나가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통과시키면

by 정필년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 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中 / 119p

책을 통해, 책에 적힌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간접' 체험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실,
'가장 좋은 이야기'는 지금 내 앞에 선 타인이 '직접' 털어놓는 이야기일지도...
응, '절대로' 그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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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빛나는 조명 아래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A.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 시키기 위해서.


퇴사 후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픈 '진'
인턴 생활로 말미암아 '쓰고 읽고 생각하는 일'의 大 전환점을 맞이하는 '재'
군인으로서의 삶을 청산함과 동시에 곧 선생님으로 돌아가는 게 퍽 신경 쓰이는 '준'
구멍가게 사장님과 100원 단위 과자값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유통회사 3개월 차 신입사원 '훈'
그런 지옥 같은 '훈'의 삶조차 내심 부러운, 또한 그렇게 될지도 모를 미래가 두려운 취업준비생 '호'
남들보다 명백히 많은 빈도로 불행한 일에 시달리는, 나만 유난인지 남들도 마찬가지인지 묻고 싶은 '인'

그런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마음 속 캐비닛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나'

여기서 중요한 건 '나' 또한 타인에게 이야기를 통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나'가 호출하는 이야기는 제각각. 여섯 명에게 이야기를 통과시켜야 한다면, 여섯 가지 이야기를 마음속 캐비닛에서 끄집어낸다. 그렇게 호출한 이야기는 '맥락에 어울리는 대화'로 주거니 받거니를 거치며,
'이야기'를 서로의 몸에 쌍방향 통과시키는데.


혼자 간직하려니 영 진도가 안 나가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통과시키면, 화장실 수챗구멍 마냥 막힘없이 쫙쫙 풀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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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할 일은─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事象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어찌 됐건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을 굴려본다. 하지만 '생각을 굴려본다'라고 해도, 그 일의 시시비비나 가치에 대해 조급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 같은 건 최대한 유보해서 뒤로 미루도록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material로서 최대한 현상現狀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中 / 119-120p

내가 기록하는 일에 힘쓰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이야기'의 보존 때문이다. 크건 작건 내 앞에 이야기보따리를 싸 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내게 찾아든 사연을 보다 생생한 형태로 간직해두고 싶다.

구구절절 받아쓰기하는 기록이 아니라,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감흥'과'인식'을 간직한 기록으로.


내가 목격한 광경을, 만난 사람들을, 혹은 경험한 사상事象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례'로서, 말하자면 표본으로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기억에 담아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에 대해 나중에 좀 더 마음이 침착해졌을 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검증하고 필요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中 / 121p


우리의 삶은 어찌보면 우리가 통과시킨 모든 이야기의 집합이다.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몸에서 통과시킨다고 해서
삶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거나,
극적인 사건이 마구 피어나 삶을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타인의 이야기를 몸에 통과시킨 우리는 서서히 변한다. '이미'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서서히 변한 것은 쉽게 삶을 속이지 않는다. 나는 서서히 변한 것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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