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서 인천집까지 돌아가려면 100분 정도 잡고 움직여야 한다. 서둘러 짐을 싸더라도 집에서 바라볼 시계는 밤 아홉시를 가리킬테니 굳이 서둘러 돌아갈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싹튼다. 보안카드키를 찍으면 1층에 닿는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편이 퇴근길의 느슨한 마음과 잘 어울리긴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일부러 타고 싶다. 괜한 꿍꿍이셈을 부린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내려다보면, 덕수궁 앞까지 이어진 청계천이 보인다. 제발 날 따라 걸으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주말 사이에 천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이팝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난다. 저 하얀 꽃나무를 따라가면 분명 좋은 곳에 닿을 거란 생각을 한다.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라온 시티팝 컴필레이션을 틀면 세운상가까지는 가뿐히 닿는다. 광장시장에 들어가면 분명 군것질을 시작할테니 애써 걷는 루트를 퇴계로 사이드로 돌린다. 어제는 건강한 저녁식사를 다짐하며 샐러드바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곁들여 식사를 하지 않았던가. 허나 지나가는 길에 괜찮은 마라탕집을 발견했으므로 어제 먹은 이브닝 웰빙 다이닝 프로젝트은 수포로 돌아간다. 어쨌든 동대문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청계천을 걷겠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내일은 집에서 아디다스 추리닝 바지를 갖고 오자. 점심 시간에 사다둔 우루사도 꼭꼭 챙겨 먹고. 나는 이런 건강염려에 다이어트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이건 단순한 정성이다. 삶을 정성스럽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실천, 다짐을 물리적으로 이루는 일이라 해두자.
나는 종각까지 3km를 너울너울 걸어가며 많은 것들을 맛본다. 머릿 속에 마음 속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이제 번듯한 직장에 다니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아온 은혜를 보답하는 일을 고민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일의 어려움과 사랑을 선언하는 순간 사랑이 아니게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종로의 큰 빌딩 지하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러 손이 가는 책을 뽑으며 꼭 알아둬야 할 것 같단 예감을 만끽한다. 서점 옆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 새로 나온 옷가지와 장신구를 입으며 살아있단 느낌을 증폭시킨다.
나는 요즈음 아름다운 것을 감각하면, 그것을 누군가와 같이 공유하고 더불어 향유하고 싶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런 욕망은 일단 인스타그램에 몇가지를 추려 올리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허나 이 건 결고 욕망의 탁월한 해소가 아니다. 이런 욕망을 같이 들여다보고, 나란히 가꾸며, 더불어 보듬어줄 사람. 그러니까 애인 내지는 동반자만이 이 욕망을 탁월하게 가꿀 것이다.
그러니 내가 열망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 편집됐다면 그 원본을 간파하는 사람,("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조상님 말씀의 유래를 자유롭게 상상해보자.) 아름다운 것을 구성하고 해석하는 폭과 깊이가 남다른 사람, (지극히 힘들고 어렵다는 걸 알지만)아름다운 것을 탐색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 그러니 우리 같이 찾아보자고 내게 제안하는 사람이다.
내게 같이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사람이다.
바라고 원하는 게 스무살 팔팔청춘시절만큼 많지 않은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 사람이 정情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의지가 아니라 상황 때문이라 믿는 포스트-팔팔청춘.
허나 딱 하나 의지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 인생풍파를 더불어 견딜 수 있는 존재를 만나려는 의지. 누군가 나에게 기대도 괜찮을 힘을 기르려는 의지. 그런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