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것들로 마음이 흐려져 있지 않다면, 가장 멋진 하루는 바로 오늘
"좋은 하루였어. 잘 가"
"최고의 하루였어. 오늘 덕분에 내일도 좋을 거 같아"
"너랑 같이 있으면 ( ~ ~ ~ ~). 다음에 또 만나!"
오늘은 제법 훌륭한 하루였다고 흐뭇해 할 수 있다면, 훗날 떠올렸을 때 모월 모일을 멋진 하루라고 선언할 수 있다면. 그런 날을 1년 365일 중에 단 하루라도 더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생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아마 어느 여름의 회식이거나 봄날의 워크샵. 다들 거하게 취한 채로 있는데, 동료가 내게 말했다. "우리 에디터님은 제가 서른 넘어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순수한거 같아요."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취했지만, 그 말 만큼은 좀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가 말한 순수는 선하고 착한 사람에게 붙이는 형용사가 아니었다. 나는 남을 위해 선뜻 이타적인 행동을 펼치는 위인도 못된다.
다만 그가 말한 순수가 다음과 같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당신은 바라는 게 있으면 꾸밈없이 소원하는 사람이고, 아주 투명하고 올곧게 욕망하는 바를 행동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점점 보기 드문데, 당신은 그런 점에서 유니크하다"
실로 그런 뜻이었다면 정확한 진단이자 맥락을 잘 짚은 탁월한 인간이해다. 그리고 그런 뜻으로 느꼈다.
요즘 내겐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듣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 스스로가 바라는 게 뭔지 제법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니까.
내가 요즘 바라는 건 타인의 욕망이 나를 경유해 펼쳐지는 것. 내 소망의 일부가 곧 너의 소망의 일부이기도 해서 우리가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집중력있는 상태에서 그 소망을 달성해나가는 것. 그것이 말을 통해, 표정을 통해, 몸짓을 통해 전달 되는 것. 그것이 너와 나의 성장과 우리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
만 나이로도 서른에 진입한 2020년 9월. 요즘의 나는 내게 제일 중요하다 믿는 몇가지 옵션을 주말에 성실하게 펼치고 있다. 남산을 중심으로 산책의 시작과 끝을 만들어 놓고, 몇가지 변수만 살짝 차이를 둔 채 움직여본다. 산책을 시작한다. 혼자 걸을 때와 둘이서 걸을 때, 셋 이상이서 걸을 때는 무엇이 다른가.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 집중하고, 짝꿍이 곁에 있다면 각자 느낀 바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걸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삶을 긍정하게 만들기도 하겠지.
이번 주도. 다음 주도. 다다음 주도. 나와 함께 멋진 하루였노라 선언할 수 있는 동반자와 함께. 따로 혹은 때때로.
주말 중 하루는 서울의 생경한 골목을 떠돌다 나머지 하루는 내 방 책상이나 침대에서 안식을 찾아 유유히 의식과 육체를 느긋하게 풀어놓는다. 시간도 느슨해진다. 다시 찾아올 주말에 루틴은 반복되며 동시에 미묘한 차이를 빚는다. 선명해지는 감각. 또렷해지는 생각들.
시간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과정 안에서 말할 힘을 회복한다. 체력보다는 정신력의 충전이 큰데, 덕분에 '다정한 사람이 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농담,너스레,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사는 한주가 되길 바라며.
가을하늘 공활해 높고 구름 없는 2020년 9월. 한주에 한문단씩 이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