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설적 재현시도 <5>
"씨앗이 없어도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창혁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앞뒤가 어긋난 말이란 걸 금새 알아챘다. "뭔 느자구 없이 나무타령이여?" 엊그제 합리적인 독일인 바이어와 합리적인 밀고 당기기를 합리적으로 성공시켰던 창혁이었다. 은영의 말을 듣자마자 계약서를 검토하듯 따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씨앗의 발아조건을 따져 뭣에 쓴단 말인가. 모처럼 느슨하게 커피 한 잔 하고 있는데 명제의 참거짓을 논하는 것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단말인가. 허나 은영의 시선이 초롱초롱 창혁을 향하고 있었기에 창혁은 저도 모르게 마음을 고쳐먹고 느긋하게 되받아치고 말았다.
"무슨 나무를 심을 수 있는데?"
은영은 창혁이 스케쥴러에 느슨하게 끼워둔 펜을 뺏었다. 창혁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창혁 딴에는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태세였다. 은영이 손에 뭔가 움켜쥘 때, 그녀는 제 스스로도 모른 채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곤 했다.
"LOVE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제목이 얼마나 많은줄 아세요? LOVE가 들어간 제목을 나무토막으로 만들어 쌓으면 아마 63빌딩까진 닿을 거예요"
"그건 좀 과장이 심한데?"
은영은 창혁 앞에 놓인 스케쥴러도 슬그머니 자기 쪽으로 끌었다.
"검색엔진에 love를 치면 연관노래가 90만개가 나와요. 순수하게 제목만 걸렀을 땐 52만개였나? 못 믿겠으면 검색해봐요."
창혁은 숫자놀음을 믿기에 얼른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문지르며 은영의 숙제를 풀었다. 90만건을 다 클릭할 수없겠지만, 검색창에 적힌 노래는 은영의 말이 허투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은영은 창혁의 스케쥴러 맨 뒷페이지의 빈종이에 노래제목을 하나찍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love...love is all... love is an open the door...plastic love... you in love... 은영이 쓰는 노래제목은 LOVE를 축으로 세로로 길쭉하게 쌓이기 시작했는데 노래가 50여개쯤 적히자 LOVE는 어느새 기둥뿌리처럼 튼실해지고 있었다. LOVE 앞에 붙는 주어 형용사 관사와 LOVE 뒤에 붙는 접속사 목적어 보어는 무수한 갈래로 뻗어나가며 은영이 쓰는 글자는 정말 나무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창혁은 은영이 적어둔 노래제목을 대구 달성공원에서 본 커다란 느릅나무같다고 생각했다.
1.
"사람들은 5월에 핀 붉은 꽃이 다 장미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장미가 아닌 것도 있어. 작약처럼말이지. 작약 꽃은 장미처럼 담장을 감싸면서 피지 않아."
"마스크 잠깐 벗고 멈춰보쇼잉, 저거시잉 목서라는 나무여. 은목서라고 하지. 저 나무는 참말로 향이 좋은디, 가을에 피는 나무여. 나주에 많이 심은 나무니께 알고들 있으라고잉. 자 그라모 우리 갈길 가세."
2.
우리는 어떤 순간에 사랑에 빠질까. 무엇이 특정 대상에 애정을 품게 만들까. 사랑은 차이를 분별하는 노력 내지는 재능에서 오는 게 아닐까. 그런 심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그런 소설을. 내가. 좀 더. 잘 쓸 수만 있다면. 그럴싸하게.
3.
저는 미술관람을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고흐는 바흐같아요." "바흐는 고흐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진술하는 사람이 좋다는 거다. 진술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나중 문제다. 차이를 구분하고 그것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웅변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다. 그런 사람들을 다루는 이야기도 근사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