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설적 재현시도 <6>
"ㅎㅎ 진짜 잘 모르겠어. 그래서 자꾸 찾아보게 돼. 답은 없고 확실한 내 생각도 없어서"
"같이 찾아보자고 ㅎㅎ. 남의 답은 내 답이 아닌 거 같고 뚜렷한 생각을 펼치기엔 세상은 넘 빨리 변하고. 혼자 걸으면 멀리 못가고 같이 걸으면 오래 멀리 갈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뭐랄까...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그게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것 같기도 해."
"예컨대?"
"결혼에 대해서도. 영원한건 없다고 믿으니, 자식을 낳는것도 결혼을 한다는 것조차도, 의미없는 걸 넘어서 내가 그걸로 고통받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거지.
"고통이라... 내가 어쩔 수 없는 타인으로 인한 타인을 경유하는 고통...?.. 인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쓸 수 있는 도약. 믿음의 도약이 두렵다?"
"그치그치 요즘에는 진짜. 나이 좀 드신분들이 너무 존경스럽다"
"한해 한해 먹어가면서 조금씩 터득하는 걸까? 난 요즘 취준생때랑 요즘 너무 다른 고민하는 요즈음이야. 예전 만해도, 내가 나로서 괜찮으면 장땡이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갑자기 요즘 들어서 타인이랑 사는 것에 대한 명상? 고민? 같은 게 확 들어오더라. 이게 단순히 외롭다 연애하고 싶다 그런거라기보다는 나도 남한테 끔찍한 게 어느 정도 있고, 남도 나못지 않게 끔찍한 게 있는데 이걸 어떻게 묶고 합쳐서 같이 잘 살아낼지. 뭐 그런 고민...
... ...
사는 건 2인3각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언뜻 보기에는 되게 불편한데, 실제로 뛰어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은 행동이랄까. 보기보다 짝꿍이랑 뭔가 해내는 게 사는 걸 썩 괜찮게 만드는 구나~ 라는 느낌?"
"으히히 어렵다. 이해 못했어 끔찍한게 있다는 말부터"
"ㅋㅋㅋ 끔찍하게 별로인 설명이 됐네... 이건 됐고 아까 스스로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했었는데 그걸 쪼끔 더 들려줘."
"그냥 뭐 나는 너무 단순해서...이전에 연애할때는 연애자체가 너무 쉬웠거든. 뭔가 재미가 없다고 해야하나. 누가 나를 사랑해주는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서 연애를 하니까 정말 내 맘대로 안되는 느낌 있잖아. 근데 거기서부터 혼란이 오는거지. 어렸으니까 어린 나이의 나를 용인해주고 예뻐해준 애인들을 만났던 거였는지 정말 나 자체를 사랑해줬던건지. 시간이 지난 후의 내가 너무 독해지진 않았는지 성격이 고집세지고 포악해지진 않았는지. 그래서 내가 원하는 연애가 어려운건 아닌지."
"... ... ..."
"사랑은 감당하는거라고 생각했었어. 한 20대 중후반까지 만났던 애인들은 나한테 한번도 그런얘길 한적이 없었는데 한 27,28이후로 만난 애인들은 나더러 너무 고집이 세대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남자같대..... 뭔가 애교가 가득한 착한 여성 느낌이 아니고 아빠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ㅋㅋㅋ 그래서 내가 뭐가 문제인건지..... 아니면 그 몇년새에 살아온 방식이 바뀌어서 진짜로 내가 그렇게 그들을 대한건지."
"호오... 스스로 느끼기에 20대 후반 애인들이 말한 성격이나 기질이 자연스러운 나라고 느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연스럽다고 느끼면 일단 괜찮은 거 아닐까~"
"ㅋㅋ 그런 느낌은 있지. 자영업을 하려다 보니까 혼자있고 자연스레 고독해질수밖에 없으니, 사회성이 떨어진건지 이기적으로 변한건지는 몰라도, 지금의 내 모습이 나쁘거나 독단적이라 생각하진 않는데, 내 스스로 깨닫지 못한건가 싶기도 하고 가스라이팅 당한건가 싶기도 하고 ㅋㅋ 그래 일단."
"아하하 가스라이팅이라니 무서운 말...ㅎㅎ 상대방이 너한테 너 아닌 모습을 기대했다거나 환상을 씌웠다가 실망하는 거라면 뭐...못 만나는 거 아닐까. 뭐 사랑은 오해나 환상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말이야.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눈높이를 서로 맞춰 나가는 대화들이야. 나는 네가 고집하는 삶의 방향이나 기준점을 같이 테이블에 올려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을 만났면 좋겠네."
"가만히 듣다보니 너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게 아니야, 믿음을 같은 눈높이에서 나란히 고민할 사람이 곁에 없는 거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뱉고 나면 남을 향한 말인데도 나에게 다시 메아리 치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