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
: 우연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리고 대부분의 존재들은 자신의 삶이 필연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획득한 삶이 필연적이고 극적이며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이 간극으로부터 욕망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진다. 이제 문제의 양상은 모두 제시되었다. 앞으로 나약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을 담보하고 있기에 성스럽지 못한 이야기는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
이 지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서사는 불가능해진다. 언제까지 우리가 거대한 신화나 거창한 영웅담을 끼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화의 시대는 막을 내린지 오래다. 마블의 영웅들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물들은 재미와 오락의 대상일 뿐, 인간의 실존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신화가 끝난 자리, 필연성의 괴물들이 홀연히 자취를 감춘 자리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우연이라는 괴물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
소설의 복판, 한 연인이 있다. 이 두 사람은 기적적인 사랑을 확신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사랑이 필연적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의 마주침은 전적으로 우연적이고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연인도 자신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다. 아주 쉽게, 관계는 부서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것이 담보하는 관계가 나약하다는 사실은 쉽게 증명된다.
이 시대의 사랑은 더 이상 매력적이고 완벽하지 않다. 황홀하고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는 낡아버렸고, 상대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적인 행위는 더 이상 사랑의 절대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과정은 때때로 추하고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하며, 때문에 불안과 공포의 근원적인 이유가 되어버린다. 이제 모든 연인들은 선택지 앞에 선다. 자신들의 사랑이 상상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던가, 현실 세계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며 환상의 영역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왜곡하던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나가서 한 잔 더 할래?”
석이는 살짝 몸을 숙인 채 나와 널브러진 내 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렇게 잠시 내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그건 옮겨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술자리를 이어 가자는 부드러운 권유처럼 들렸다.
“나는 먼저 갈게. 너무 피곤해.”
“그렇겠다.”
석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짐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일들은 나중에 석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떠올린 기억이었고 어쩌면 영영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순간들이었다. 나는 곰곰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석이도 나도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날들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된 세계. 그곳에서 석이와 내가 아무 관계 없는 각자의 미래를 향해 웃으며 흔들리며 느릿느릿 살아가는 상상. 그건 아득한 크기의 우주를 떠오르게 했다. 언젠가 내가 깊은 잠에 빠진 것이 있고, 거기 어떤 것들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다른 우주의 똑같은 방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 11쪽
모든 것이 우연인 세계에서 선택의 무게는 매 순간마다 더해진다. 필연의 세계에서 모든 선택은 일정의 면죄부를 부여받는 것과 대비된다. 이 세계에서는 매 순간의 선택이 결과의 정도를 극심하게 가르며, 선택하지 않았던 일들의 존재가 동시에 부정된다. 선택지1을 고르면서 우리는 선택지2나 선택지3, 혹은 무수한 선택지들을 동시에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실험의 결과는 아주 복잡한 양상을 가지게 된다.
단 하나의 예정된 미래만이 존재하는 필연의 세계에서 벗어난 존재는 여러 가능한 결과들의 총합으로서 현재의 선택지를 대하게 되고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은 가중된다. 우리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보장받지 못한다. 이 단순하고 자명한 문장 앞에서 주체는 그 어느 순간보다 나약하다.
하지만 소설 내부의 '나'는 우연성의 세계에 존재하는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선택지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자신 내부의 불안을 해소한다. 가능세계, 무수한 연속체로서의 시공을 상상하며 그것 모두가 존재하는 평행세계적인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행운일지 불행일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지들 모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우연성의 세계에서 실존하기 위한 주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걱정이 돼서 지켜봤어.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애는 어쩌려고 그러나. 세상에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근데 웃는 모습 예쁘네, 생각했지.”
석이가 이를 드러내고 하하 웃었다.
“괜한 걱정이었어. 너는 모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잘 지켜 내더라.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보였어. 모르는 게 아니라 다 알고 있구나. 알고도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저 사람들을 견디고 있구나. 그게 신기했어.” - 16쪽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선 거리를 두고 망설여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미 석이가 단출한 짐을 들고 새로운 방 앞에 서 있던 기억,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문가에 서서 차갑게 식어 있는 방 안을 멍하니 훑어보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진짜로 겪은 어떤 시간처럼. - 22쪽
하지만 가능세계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세계와의 괴리는 발생한다. 과거의 '나'가 했던 선택들의 총합인 현실세계는 가능세계의 존재 가능성으로 인해 쉽게 누추한 일면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의 기억은 선택지 이상으로 작용하지 못하며, 선택의 과정, 그 순간은 끊임없이 망각되며 각색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과거의 선택지를 복기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지를 미약하게나마 꿈꾸는 행위는 그 자체로 실존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결과인 현재를 부정하는 것은 실존에 꽤나 큰 위협, 불안과 우울이 된다. 이제 문제는 복잡해진다. 가능세계의 일면을 인정하는 것과 가능세계 모두가 실존한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위협 속으로 우리의 개별존재를 몰아넣게 된다.
석이의 방에는 천변 쪽으로 난 작은 창과 조그만 테라스로 이어지는 큰 창이 있었다. 한낮이면 방 안은 온통 햇살로 가득 찼다. 석이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천의 물결이 반사되어 일렁이는 천장을 바라보면 밝고 몽롱한 물속에 잠긴 기분이 들었다. 석이와 팔과 내 팔이 닿는 감촉, 서로가 따뜻하게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실재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석이의 팔 안으로 파고들어 가슴 위에 귀를 얹으면 세상은 잠시 분명한 박동의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세상에서 말은 언어가 아니었다. - 26쪽
하지만 실존의 감각은 어떤 과거의 선택들로 체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질감에 가까워서, 어떤 특수한 경험들로 구성된다. '석이의 팔과 내 팔이 닿는' 구체적인 감각, '서로가 따뜻하게 들이쉬고 내 쉬는 숨결'의 정도성이 모두 구체적인 경험이 되어 실존의 뼈대를 이루게 된다. 우리의 자아를 공고하게 할 수 있는 가능태는 모두 '박동의 형태'를 띄게 되며, 무수한 가능세계의 나열보다 분명 강렬한 이미지가 된다. 이제 실존은 불안을 품고서도 타인과의 마주침에 의해 천천히 증명된다. 따뜻한 가능세계, 우연성으로 점철되었지만 위태롭지만은 않은 연인의 세계로 자아는 나아간다.
석이는 최악을 상상하고 다가올 피해의 최대치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인지 미리 가늠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불운을 극복 가능한 형태로 재단해놓지 않으면 한순간도 견디지 못했다. 상처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 소진했다. 그건 비효율적인 감정 소비였지만 어쩐지 비난받을 일도, 고쳐야 할 기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목소리나 체온같이 석이의 일부였다. 과정을 설명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석이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 35쪽
하지만 '나'와 '석이'는 분명 다른 존재이다. '나'가 실존을 찾아 헤매고 다시 새로운 실존의 방법론 안에 정착하여 안도의 숨을 내쉬는 와중에도 '석이'는 방황하고 헤매게 된다. '나'의 자아와 '석이'라는 타인은 사랑의 과정 안에서마저 온전히 조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석이'를 '이해'하지만, 결코 '석이'를 구원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는 불능으로 수렴하며 가늘게 진동한다. 언젠가 끊어질 필라멘트처럼.
석이는 관계망 안에서 자신을 파악했고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꼈다. 입버릇처럼 늘 스스로를 혼자라고 말했는데 그건 고독하다는 말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을 자기 몸 밖의 존재로 인식했지만,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그들과의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간격은 석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단하게 주어져 있기도 하고, 석이가 자신의 정의에 맞게 조정하기도 했다. 나는 석이가 그런 식으로 은밀하고 단호하게 밀어낸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석이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마음을 품고, 거리가 가까운 소수의 사람, 이를테면 가족이나 연인에 대해서는 자꾸 자기 자신과 혼동했다. 나를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여기다가 내가 내 몸을 가진 타인이라는 걸 깨달으면 깜짝 놀라곤 했다.
간격은 나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타인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기보다 순간 속에 존재했다. 완전하게 나타났다가 완전하게 사라졌다. - 41쪽
이제 실존의 문제는 자아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방식 속에 기거한다. 서로 다른 방식의 인식론이 두 사람의 사랑을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우연성으로 점철된 세계에서 필연적인 마주침을 발견하고자하는 연인적인 욕망이 두 사람을 묶었다면, 이제 그 욕망 자체가 두 사람을 흩어지게 만든다. 같은 이유로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형적이지만 충분히 인정가능한 형태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이유 없이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연말의 혼잡한 도로 위에서 택시는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다. 거리는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왼편 창가에 앉아 노란 조명이 반짝이는 호텔과 균일한 가로수와 매끈하게 솟은 고층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건물 전광판은 소리 없이 현란한 영상으로 번쩍였다. 문득 내가 어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을 때, 석이는 오른편 창밖으로 낙후한 가게들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곳이 너무 어두워서 나는 깜짝 놀랐다. 석이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석이의 고요한 옆얼굴을 바라보며 석이가 내 이름을 몇 번 불렀고 내가 듣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랑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석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오직 석이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망망대해를 이리저리 표류하는 작은 뗏목에 고립된 채 서로 다른 방향의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 56쪽
“오랜 시간이 흐르고 깨닫게 되었지만, 애초에 누군가가 내 안에 온전히 들어오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냥 나를 스치거나 이따금 특별한 순간에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갈 뿐이죠. 가장 좋은 건 그 사람을 내 가장자리에 두는 겁니다. 내 안과 가장 멀고 내 바깥과 가장 가까운 곳에요.” - 113쪽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 다른 길로 갔다면 지금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 길은 이미 존재해서 펼쳐져 있는 게 아니라,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만들어지니까요. 과거의 기억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머릿속에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잊을 수 없는 과거가 시작되는 겁니다.” - 121쪽
우리는 커다란 물 위에서 아주 느릿느릿하게 꿀벌이나 번개의 궤적을, 꿈이나 파도의 변화를 따라 움직였다. 그것은 완전한 미지의 경로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거의 비슷한 속도로 흘러가리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 126쪽
살아간다는 것,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실존을 확신하게 되는 것은 모두 신기루에 가까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우연의 산물일 삶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와 '석이'의 연애사에 난입해서 자신의 연애사를 들려주는 '남자'의 존재만큼이나 뜬금없는 것이 삶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완전한 미지의 경로'안에서 개별주체는 수많은 분기점 앞에 서게 되고, 선택지의 수많은 가능성으로부터 도피하듯이 필연성이나 신화적인 완성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오락의 대상이지 절대 삶의 방식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충분히 알 고 있다. 슬픈 인식이 가난한 공기를 축조하며 우리의 주변을 에워싼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신화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신화가 되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 전 연인의 죽음이 낯선 '여자'로부터의 전화를 통해 전해진다. 전 연인의 현재 연인인 '여자'는 '나'에게 전해줄 것이 있다고 덧붙인다. 달갑지 않은 소식의 연속 앞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흐려지는 창 밖 풍경처럼 세계는 희미해진다. 와이퍼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시야는 걷어지지 않는다. 가속페달 위에 올린 발끝에 힘을 주지만 도로는 끊어지지 않고, 갑자기 시야 복판에 덤프트럭이 돌진한다. 가까스로 핸들을 돌려 살아남지만, 살아남았다는 감각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사고의 가능성, 들뢰즈는 타자와 자아의 마주침이 전적으로 사고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나'라는 자아와 '여자'라는 타자가 마주쳐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과 '나'가 탄 차가 덤프트럭과 부딪힐 뻔 한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리라. 타자의 돌출은 언제나 급작스럽게 이뤄지며, 그 결과 '나'라고 하는 자아 역시 자의와는 상관없이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언술은 틀리지 않다. 타자는 사고이다.
이제와 생각해보아도 그런 그의 몸 어디가 아팠던 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그는 가끔 함께 있다가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거나 며칠씩 연락이 되지 않다가 불쑥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아팠다고 불러댔는데 어디가 아픈 건지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구멍 같은 거야. 나한테 작은 구멍이 있는데 여기엔 내가 빠질 수도 있고 내 곁의 다른 사람이 빠질 수도 있어. 구멍에 빠지는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운이 좋다면 빠지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구멍 같은 건 모르게 지내는 게 좋아.
그가 병이 아니라 교통사고로 죽었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일도 아닌데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들은 몇 가지 기억 말고는 어쩐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는 서너 달 정도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크게 다투고 헤어진 것이 아니어서 마주치면 웃으며 안부를 묻기도 했던 것 같다. 스윙바에 나가는 일은 점차 소원해지다가 결국 나가지 않게 되었다. - 135쪽
과거의 연인을 기억하는 행위는 오로지 '여자'의 돌출로부터 시작된다. 어딘가 아팠던 과거 연인의 모습은 희미하고 때로는 의뭉스러울 뿐,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존재는 '나'에게 과거의 연인보다 확실하게 인지된다.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나'의 기억 속에 파문을 일으키고 과거는 매순간 갱신되며 새로운 지점들을 탐색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는 고정되어 있기에 없었던 일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다. '여자'의 존재가 얼마나 새롭고 거대하든 간에, 과거 연인은 언제나 일정부분 탈락된 채로 구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자는 버스에서 내려 갓길을 따라 휴게소까지 걷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다른 버스나 택시를 알아보겠다고.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이 빗속을 걷는다고요?”
“여긴 비가 오지 않아요.”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쉰 것 같았다.
“아주 무더워요.”
“비가 오지 않아요?”
여자는 듣고 있지 않았다. 옆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뭔가를 묻고 있었다. 나는 먼 곳의 희미한 얘기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창가로 돌리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뿌연 비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여자가 결론짓듯 말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10시가 넘을 것 같아요. 주소를 알려 주면 집으로 갈게요.”
나는 그러고싶지 않았다. 여자에게 집을 알려주는 일은 정말이지 하기 싫었다. 하지만 여자는 문자로 남겨 주세요 라고 말하며 멋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끊어진 전화를 들고 탁자 위에 놓인 식어 가는 커피를 바라봤다. 못된 장난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 139쪽
시야를 가리는 빗줄기는 '나'에게만 주어져있을 뿐, '여자'에겐 주어져있지않다. 이 공평하지 않은 상황이, 이 불균형이 '나'의 실존을 위협한다. 더 나아가 '나'에게 전해주려는 과거 연인의 물건은 무엇인지 '나'는 절대 알 수 없다. '여자'와 만나서, '여자'가 건네는 과거 연인의 물건을 확인한 후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나'에게 전할 과거 연인의 물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이미 알고있다. 이 정보량의 차이는 시야의 정도와 정확하게 비례한다. 이제 '나'의 실존은 '여자'에 비해 흐릿해진 것이다. '여자'는 걸어서, '나'에게 오고 있다. 어찌해야 하는가.
선배는 주문을 마친 후에도 벽 근처를 오가며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머리 위에서 흐르고 있을, 이렇게 큰 건물을 휘감을 만한 양의 무거운 물을 떠올려보았다.
“확실히 그건 좀 불안하네.”
“그렇지?”
“응. 지진이라도 나면 큰일이겠어.”
“지진이 날까?”
파파가 웃었다.
“이곳이라고 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지.”
“어디에 지진이 났어?”
나는 차분하게 라디오에서 들었던 소식을 전해주었다.
“먼 나라에서 지진이 났대. 큰 산이 무너지고 건물과 도로가 종이처럼 휘어서 부러졌대.”
파파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특보를 왜 나는 듣지 못했을까? 내가 아침에 들은 것은 덤프트럭과 충돌해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고 소식 뿐이었는데.”
순간 차갑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 있지. 지금 어느 곳에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 148쪽
'덤프트럭과 충돌해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고 소식'은 살아남은 '나'의 경험과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그 뉴스에 '차갑고 무서운 기분', 즉 불안을 감지하는 것이다. 반면 '먼 나라에서 지진이 났대. 큰 산이 무너지고 건물과 도로가 종이처럼 휘어서 부러졌'다는 '선배'의 말은 그 어떤 위험도 내포하지 않은 말처럼 들린다. 현재의 '나'와 조금 먼 것처럼 느껴지는 지진에 대한 뉴스는 덤프트럭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보다 미약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소식의 병렬적인 대비는 정말 '나'와 변별적으로, 차등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두 소식 모두 '나'의 실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의 덤프트럭 뉴스와 후자의 지진 뉴스는 서로 다르지 않다. 다만 현재의 '나'가 감각하고 있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 자신의 세계와 가까운지 먼지 느낄 뿐, 실제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둘 모두 가능한 일이다. 충분히 가능하기에 위험을 내포하는 뉴스이다. 두 사건 모두 '나'의 삶을 일순간 묻너뜨릴 수 있으며, 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거대한 사고이다. 따라서 둘 모두 위험하고 실제적인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자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파파가 나를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살짝 꼬인 채 연결된 세계에서는 수평이나 수직상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먼 곳의 사람과도 만나게 돼. 가령 고대에 날아올랐던 새가 오늘 아침 땅 위에 짧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나, 지구 반대편 설원의 슬픈 노랫소리를 불현듯 오래된 시억 속에서 듣게 되는 일 말이야.”
여전히 빗방울은 단단한 유리창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저 많은 물은 모두 어디로 갈까, 문득 생각했다. 물은 정말 무거울 텐데, 걱정하다가 역시 구멍은 숨겨 두는구나, 납득하며 고래를 끄덕였다. 이제 빗방울은 낙하하는 모습이나 피부에 닿는 습도가 아니라 무언가와 충돌하는 소리로만 남아 있었다. 머리 위로 무거운 물이 흐르고 언제 땅이 뒤틀릴지 모르는 호텔 방에서 나는 그런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파파가 내 이름을 불렀다.
“미안 잠깐 졸았나 봐.”
나는 반쯤 뜬 눈으로 기묘하게 음영이 진 파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얼굴의 윤곽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아무것도 듣지 못했겠구나.”
파파는 웃으며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의 움직임은 딱딱한 대리석이나 범고래의 뼈를 살펴보는 것처럼 세심하고 부드러웠다. 파파가 속삭였다.
“너에게 정말 중요한 충고였는데.” - 161쪽
'나'는 '파파'의 충고를 듣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 또한 만나지 못한다. 중요한 과거의 기억은 끝끝내 기억되지 못하고 현재의 상황마저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에 갇히게 된다. '나'가 위험의 정도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것처럼 언제 '나'의 인생이 무너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다. 이제 삶은 '나'에게서 조금 더 거리를 둔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 자본주의적인 기획이 국가장치의 영역으로 넘어섰을 때, 인간, 개별주체는 국가장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미래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로 모든 것을 환원시킨다. 굳이 장르소설적인 전문성 없이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선하나 요원한 이야기이다.
딸아이는 계나의 품으로 파고들어 자는 것을 좋아했다. 계나가 딱딱한 손으로 머리와 등을 쓸어주며 가만가만 들려주는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계나는 아이에게 신이 세상에 관여하고, 왕자와 공주가 사랑하고,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던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마늘을 먹던 이야기나, 날개 달린 말이 품던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지형이나 종교와 같은 이유로 무리를 짓고 시시때때로 싸우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수십 년간의 휴전 상태 그대로 사라진 나라의 이야기였다. 나라를 빛낸 자랑스러운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강의 기적과, 어떤 배의 침몰도 있었다. 아이는 그 모든 이야기를 신화와 전설처럼 듣는다. 단 한번도 나라를 가져 본 적 없는 아이는 이야기에 푹 빠져 황홀한 얼굴이 되지만, 절대로 그런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아이의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세계였다.
그럼에도 계나는 아이의 침대 맡에서 아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어둔 방에 켜 둔 오렌지색 스탠드 불빛에 반쯤 모습을 드러낸 채,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런 세상이 있었다고,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고. 서운하지도 노하지도 않은 얼굴로 말한다. 그 순간 아이에게 계나는, 전설처럼 보인다. - 280쪽
: '현철'은 자신의 '딸'이 염산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내 '연주'와 이혼한 뒤 '딸'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버지인 '현철'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영역의 '딸'을 추측할 뿐이다. 절대 알 수 없을 절대적인 타인으로서의 '딸'을 추적하는 '현철'의 움직임은 그리 필사적이지 않다. 분노 없이 담담하게 이어지는 단편적인 '딸'과의 기억들, 그리고 '딸'의 친구들이 들려주는 '딸'의 다른 모습들, 그 둘 사이의 괴리는 확정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막막함을 배가시킬 뿐이다. '딸'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없는 아버지존재 '현철'은 비정상적이고, 그렇기에 전형적이다.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을 통해 소설은 더욱 잔인하게 굴기 시작한다.
아버지 '현철'이 걱정하는 것은 '딸'의 안위나 '딸'에게 주어진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의 형상이 아니다. 정작 '현철'이 걱정하는 것은 '딸' 외부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딸'의 내부에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 무엇, '현철'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사건의 다발이다. 부도덕한 '딸'의 모습은 오직 '현철'의 내부에서만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현철'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확신하지 않는다. 이 차갑고 냉철한 이성주의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 중심인물 '현철'이 소설 끝끝내 고백하지 않은 가정폭력의 형상은 무엇으로 추측되며, 무엇으로 기능하는가. '유령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황이나 정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기분들', 알량하다고 낮잡아봤던 그 정동의 양상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그 애는 매일 나랑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버스를 타요. 등교를 할 때는 내가 먼저 타고 하교를 할 때는 그 애가 먼저 내려요. 그러니까 나는 그 애와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그 애가 어디쯤 살고 몇 시쯤 학교를 가고 또 몇 시쯤 집에 가는지 알고 있었던 거예요. 아주 무심결에요. - 288쪽
그런데 지난주에요. 정말 추웠던 날 있잖아요? 수년 만의 폭설이라고 떠들썩했던 큰 눈이 내리기 바로 전날 말이에요. 그날은 눈구름 때문에 아침인데도 한밤처럼 깜깜해서 늦잠을 잤어요. 거의 수업이 시작했을 시간에 버스를 탔는데 그 애도 그 버스에 타는 거예요. 나는 그 애가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교복을 입은 학생이라곤 나랑 그 애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에요. 그 애는 얇은 감색 재킷만 입고 있었고 장갑이나 목도리는 하지 않았어요. 낮게 묶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귀가 아주 빨갰어요.
딸은 잠시 말을 멈추고 현철 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어진 목소리는 느리고 부드러웠다.
그날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 애를 또 봤어요. 그 애는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애들 곁을 지나는 순간 대화 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짧은 순간에요. 그 애 친구가 춥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애는 목도리를 버스에 풀어놓고 그냥 왔다고 말했어요. 나는 그때 잠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는데 그 애가 멀어지면서 다시 한 번 말했어요. 오늘 처음 매는 보라색 목도리였는데……. 복도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 애의 귀는 여전히 아주 빨갰어요. 그날 온종일 그 애의 보라색 목도리에 대해 생각했어요. 내가 보지 못한 보라색 목도리는 어디에 있지? 내가 본 보라색 목도리를 하지 않은 그 애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버스에서 그 애를 주시할 때, 눈꺼풀을 내리감았다가 다시 뜨는 찰나의 순간 깜빡, 그 애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보라색 목도리를 처음 두르던 다른 세계의 기억을 가진 채 말이에요. 물론 그 애는 그냥 거짓말이 하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불현듯 튀어나온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하는 기분과 두 우주가 겹쳐지는 순간이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 290쪽
한 '아이'에 대한 기억을 통해 '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철'에게 들려주는 것은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우연성과 가능세계의 이합집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아이'를 관찰하고 그 '아이'를 통해 가능세계의 존재, 평행세계의 무수한 나열을 꿈꾸는 '딸'의 고백은 절절한 실존주의적 탐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딸'과의 대화는 현재의 '현철'에게 새로운 지대를 형성하며 재인식된다. '딸'에게 닥친 비극의 형상을 조율하기 위해, 수단으로 동원되는 기억인 것이다. '현철'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 '딸'과의 대화를 통해 '현철'이 인식하고자 하는 현재는 과연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이기적인 인물 앞에서 읽는_존재는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는가.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는 딸은 아름답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다. 혈색이나 눈짓, 입가 근육이 가려진 딸의 얼굴은 차갑고 완고해서 병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손목의 봉합자국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딸은 80시간 가량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긍정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하던 의사도 점차 입을 다물었다. 간호사들이 여덟 시간마다 고름이 들러붙은 딸의 붕대를 벗기고 일그러진 눈두덩과 광대와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피부에 약을 발라 주었는데, 그때마다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연주와 달리 현철 씨는 괜찮았다. 붕대 아래 가려졌던 딸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니 오히려 면회가 허락되지 않던 시간 굳게 닫힌 병실 문 앞에서 다친 딸의 모습을 상상하고 오한을 느낄 때보다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현철 씨는 화들짝 놀라 딸의 병실을 뛰쳐나왔다. 길고 좁은 병원의 복도를 걸으며 그에게 찾아온 이름없는 감정에 대해, 그것이 주는 죄책감에 대해 생각했다. 딸은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엔 누구의 책임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고는 일어났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죄의 작용을 현철 씨는 속수무책으로 감당할 뿐이었다. 잠을 자지 않으려는 연주의 등을 밀어 집으로 보내고 병원 편의점에 기대서서 인스턴트 야채죽으로 늦은 점심을 먹을 때에야 현철 씨는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 - 293쪽
안도감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는 죄책감과 정확하게 비례한다. 죄책감의 깊이가 깊을 수록 그 사건에서 떨어져나와 느끼는 안도감 역시 깊어지는 것이다. 이제 두 감정이 상보적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어쩌면 두 감정의 양상은 하나의 기억이나 사건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근원적인 사건 혹은 기억은 무엇인가. 왜 그는 '딸'의 비극에 대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일까. 왜 그는 '딸'의 비극 앞에서도 '딸'의 과거를 의심하고 확인하려 드는 것일까.
어쩌면 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현철 씨는 생각했다. - 296쪽
인간은 누구나 가시광선을 보며 살아가지만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빛의 영역이 있단다. 우리는 평생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지만 보이지 않는 빛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빛이 우리 곁에 없는 것은 아니야. 때때로 우리 눈은 실수를 해서 아주 희박하게 다른 영역의 빛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이유없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명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어쩌면 영혼이나 유령을 보는 사람들은 좀 더 넓은 영역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단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은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분리되지 않은 채 순서도 정렬도 없이 동시에 생성되는 거라면? 정신 분열증이나 치매 환자가 제대로 우주를 보는지도 모를 일이지. 파동으로 봤다가 입자로 봤다가, 그 고양이가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횡설수설하는 게 진실일 수도 있어.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더러운 이중 속마음과 겉치레 몸뚱이를 간파하고 있는지도 몰라. 고정된 관념을 정확히 보는 사람들, 혹은 보려는 것만 보는 정상인들이 사실은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그것의 전부가 아니야. 절대로 그것을 온전히 볼 수 없단다. - 304쪽
필연론적인 세계관은 '현철'이라는 인물의 아주 대표적인 관성을 자아낸다. 우연적인 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별주체에게 주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은 필연적일 것이라는 낙관이 '현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딸'의 세계관은 우연론적이며 우발적이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단지 '아주 평범한 사고'(313쪽)이라 규정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이 상반된 세계 인식의 방법은 자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숨겨진 과거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곧 알게 될 것이라 확신하는 사실들을 추구하는 '현철'은 '딸'에게 닥친 사건을 비극 그 자체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사건들이 존재할 것이라 믿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의 실제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점에서 사건의 이면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이 무슨 희비극이란 말인가. 자신의 '딸'을 의심하면서 우연적으로 주어지는 여러 단서들에 의해 착란적이고 분열적인 방식으로 수사하는 수사관_아버지 '현철'의 모습은 기괴하게 억눌린 괴물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우연적, 우발적으로 주어진 비극 앞에 인간 개별주체는 그것을 그대로 인식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신의 시험이니, 과거의 잘못에 대한 벌이니 하는 개념을 동원해 현재의 비극을 다른 차원으로 곡해하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인식의 방법론 중에서 가장 저열하고 질 낮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비극은 오로지 사고로서만 기능한다. 그 외의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우발적인 사고 앞에서 과거의 망령과 권선징악적인 세계관을 동원하는 것은 사건 자체의 본질을 흐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건은 사건 자체로서 기억되어야 한다. 그것은 권선징악이니 신적 호명이니 하는 환상성의 영역으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로지 사건 자체를 그대로 인식할 때, 사건은 명확해지고 흔들림이 줄어든다. 보고자 하는 것이 확실한 인간은 보고자 하는 것이 없더라도 기어코 그것을 발명해낸다. 그것의 실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존의 문제는 저멀리 물러난다. 거짓 속에 스스로를 감춘 자아, '현철'이라는 상징이다.
현철 씨는 노란 빛이 새어 나오는 복사기를 가만히 지켜보며 일그러진 얼굴의 갓난아이를 떠올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의 사라진 얼굴을 생각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없이 우는 아이였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얼굴 없는 아이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젖꼭지를 세게 물거나, 구두를 사러 백화점에 간 것처럼 운이 나쁜 아이들이었다. 그 불운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현철 씨는 생각했다. - 306쪽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행위는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을 가려버린다. 이 얼마나 무서운 외면인가. 실존에 대한 외면으로부터 인류사 대부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지나친 추구는 현실세계에 대한 정직한 외면으로 이어졌으며, 현실세계에 위치한 자아에 대한 가혹한 착취로 이어졌다. 가난하고 기형적인 인식론이 이 지점에서 발원한 것이다.
현철은 한 번도 뒤척이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기울어진 늙은 나무처럼 잤다. 연주는 물을 한 잔 따라 마시고, 현철이 자고 있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조금 연 뒤 담배를 피우며, 오늘밤 현철은 결국 깨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난하고 술에 취한 남자였다. 그리고 연주는 자신의 딸 역시 결국 깨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히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을 하며, 딸의 침대 옆에 달린 간이침대로 돌아가 몸을 작게 말고 누웠다. 얇은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리며, 사고를 당하고 처음 마주한 딸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연주의 마음에 이상한 감정을 일으키는 아주 의문스러운 말이었다. 하얀 뼈가 드러난 얼굴로 딸은 말했다. 괜찮아요, 엄마. 이건 아주 평범한 사고예요. - 313쪽
오히려 '딸'의 마지막 말만이 어떤 가능성을 말해줄 뿐이다. '사고'는 '사고'자체로, '사건'은 '사건'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용감한 인식론, 정직한 인식론이 다시 한 번 호명된다. '기울어진 늙은 나무'는 오래 생존할 수 없다. 곧 고사枯死하고야 말 것이다. 우리의 실존은 이렇게 위태롭다. 어떻게 이 세계를 보는가에 대한 문제가 고스란히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해답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