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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raiano Mar 08. 2019

프리드리히 니체 - 비극의 탄생, 8주차

12장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의 합창단과 비극적 주인공에 대해서 우리가 가졌던 낯선 느낌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두가지를 우리의 습관이나 전통과 조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저 이중성 자체를 그리스 비극의 근원이자 본질로서, 즉 서로 얽혀 있는 두 예술충동인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표현으로서 재발견하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 에우리피데스가 뒤바꾼 비극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을 비교하려 합니다. 에우리피데스는 근원적이고 전능한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비극에서 정립했던 아이스킬로스와 달리 새롭게 비극을 순수하면서도 비디오니소스적으로 건립했습니다. 


에우리피데스 자신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러한 경향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물음을 하나의 신화에서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어조로 제기했다. 도대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존속해도 좋은가? 그것을 그리스 땅에서 강제로 근절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래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신은 너무나 강력하다. (중략) 가장 현명한 적대자조차도 나중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을 재정립하게 된 계기는, 그가 이성을 토대로 비극을 엄밀하게 분석하려 했기 떄문입니다. 여기서 이성과 분석은 소크라테스적 가치와 동일합니다.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 이외의 것들을 배제한 에우리피데스는 결국 기존 비극이 자신의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배제한 새로운 비극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완전히 없앨 수 없었습니다. 이는 바로 근원적 일자, 자연 합일이기 때문에 인간 내부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와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대립이다. 그리스 비극작품은 이러한 대립으로 인해 몰락했다. 에우리피데스가 자신의 경향을 취소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하려고 했을지라도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중략) 이제 저 소크라테스적 경향을 살펴보자. 이것을 무기로 에우리피데스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과 투쟁했고 그것에 승리했던 것이다. 연극을 오직 비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세우려 한 에우리피데스의 의도가 최고의 이상적인 형태로 실현되었을 때, 그것은 어떤 목적을 가질 수 있었는가? (중략) 오직 극화된 서사시만이 남을 것이다. 서사적-아폴론적인 것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가장 가공할 사물들조차도 가상에 대한 저 즐거움과 가상을 통한 구원으로 마법을 걸어서 우리 눈앞에서 찬란하게 변용시켜 버린다.


- 니체는 이제 소크라테스적 가치와 경향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적 가치가 디오니소스적 가치에 대해 우위를 점했을때 그리스 비극에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였는지를 말합니다. 비극은 서사시적인 형태로 변형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니체가 후기 그리스 비극을 옹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니체의 서술이 편향된 느낌이 있습니다. 실제로 문헌학계에선 니체의 이런 식의 비극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극화된 서사시의 작가는 서사 음유시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떠올리는 형상들과 완전히 융합될 수 없다. 그는 항상 조용히 움직이지 않은 채 먼 눈길로 자신 앞에 있는 형상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극화된 서사시에서 배우는 근본적으로 여전히 음유시인이다. 그의 모든 연기에는 자신이 내면에서 꿈꾸고 있다는 느낌이 감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완전한 배우가 되지 못한다.


- 변형된 비극, 서사시적인 비극에선 자기포기가 불가능합니다. 비디오니소스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논리에 부합하는 요소들만을 비극에 추가하였기 떄문에 자연력을 포함하는 요소들은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후기 그리스 비극의 작가들과 배우 모두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자연 합일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의 형상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표현하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이를 계기로 현재 극의 배우관이 정립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개별자의 배우만이 부각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의 본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아도 될 것이다. 이것의 최고 법칙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지적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명제인 "아는 자만이 유덕하다"와 병행한다. 이 기준을 손에 들고 에우리피데스는 모든 것 하나하나를 측정했으며 그 원리에 맞게 그것들을 수정했다. (중략) 에우리피데스의 프롤로그는 합리주의적 방법이 갖는 생산성의 한 예가 된다. 작품의 서두에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 자신이 누구인지, 가장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심지어 작품의 진행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근대의 연극 작가에게는 긴장 효과를 고의적으로 포기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일 것이다.


- 소크라테스적 가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더 탐구합니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적 가치는 진리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이성을 극단적으로 사용하는 합리주의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적 가치를 받아들여 비극에 프롤로그를 도입했습니다. 논리적으로 서사구조를 맞추고, 그 서사구조를 관객에게 논리적으로 전달하게끔 만드는 것이 에우리피데스와 소크라테스에겐 더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줄거리가 아니라 열정을 위해서 모든 것은 준비되어야만 했다. 열정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은 배척해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중략) 이런저런 인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향과 의도들의 이런저런 갈등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청중이 계산해 내야만 하는 한, 주인공의 고통과 행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주인공의 고통과 공포에 대한 숨죽인 공감도 불가능하다.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관객들에게 작품 이해에 필요한 실마리를 최초의 여러 장면에서 어떤 의미에서 우연히 제공하기 위해서 재치 있는 기교를 사용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어쨌든 에우리피데스는 관객이 최초의 여러 장면에서 그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헤아려 내느라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따라서 서막이 갖는 시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에우리피데스는 극의 줄거리만을 위해 모든 것을 수단화시켰습니다. 따라서 줄거리에 음악, 무대, 배우는 희생하는 구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비극정신과 주신찬가, 음악은 그 중요성을 잃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무대적 장치는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었으나 비극을 보고 자연과 합일되는 비극적 효과는 희생되었습니다. 후에 니체가 말하지만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의 파괴는 민족, 사회, 국가, 예술 등 전반적인 변화를 야기하게 됩니다.


때로는 하나의 신이 비극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를 관객에게 보장하고 신화의 실재성에 대한 모든 의혹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경험세계의 실재성을 신의 진실성,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신의 성격에 호소하는 것을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즉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의 주인공의 미래를 관객에게 보장하기 위해서 극의 마지막에서 신의 진실성을 다시 한 번 필요로 한다. 이것이 저 악명 높은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의 임무이다.


-에우리피데스가 도입한 프롤로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극의 줄거리 외적인 요소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설명하는 역할, 즉 신을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은 전지전능하여 극 전체를 관망하고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이러한 신의 전형이 후에 기독교적인 신으로 발전한다고 니체는 후에 말합니다.


13장부터 15장까지는 발제의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13장


기존의 그리스비극들은 논리적인 전개와 형식 대신 본능적이고 우연적인 형태를 가졌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는그리스 비극이 왜 이러한 형태를 뗬는지에 대한 고찰 대신 통찰의 결여와 망상의 지배라는 꼬리표를 붙였으며, 이들을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이다. 정상적 인간, 기존의 그리스인에게 본능은 창조자의 역할을 하고 의식은비판자의 역할을 하는 반면 비정상적 인간, 소크라테스적 인간에게는 본능이 비판자의 역할을 하고 의식이창조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본능과 의식의 역할이 전도됨에 따라 소크라테스에게 본능은 항상 무엇인가를하지 말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비신비성으로도 연결되는데, 소크라테스는 본능 대신 논리적 천성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소크라테스의 논리적 천성은 인간 내부 대신 자연 전체를 향하며, 이러한 점에서 디오니소스의 자연력과같다. 소크라테스적 철학은 디오니소스적인 힘과 마찬가지로 거대하며, 따라서그리스인은 본능이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영향은 죽음을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지도 않았다.



소크라테스의영향으로 인해 그리스 비극은 점점 몰락의 길을 걷는다

디오니소스적 가치와 아폴론적 가치의 관계와 달리

소크라테스적 가치와 디오니소스적 가치는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다

이러한점은 소크라테스가 본능을 비판하고 논리적 천성만을 강조하고

기존의 그리스 비극이 논리적인 구성 대신본능적이고 우연적인 형태를 가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여기서 니체는 소크라테스적 가치를 비판하며그리스 비극의 가치를 옹호하려 한다


14장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비극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고, 이에 가장 유명한 예로 플라톤이 있다. 비극시인이었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시작품을 불태웠다. 그리고 자신의 저작에서 예술에 대해 ‘어떤 가상의 모방이라는 것, 따라서 경험적인 세계보다 더 열등한 낮은 영역에 속한다’며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험적인 현실 근저에 있는 이데아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인 대화편을 저술했다. 비극이 이전의 모든 예술장르를 자신 안에 혼합한 것과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대화편 또한 이야기·서정시·연극 사이에서, 산문과 운문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으며 동일한 언어 형식이라는 이전의 전통을 깨뜨린다. 이럼으로써 그는 소설(Roman)의 모범을 제공한 것이다. 플라톤은 예술을 비판했던 소크라테스를 따랐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든 것이다.


 시가가 변증론적 철학에 대해 갖는 지위는, 변증론적 철학이 신학에 대해 가졌던 지위, 즉 시녀로서의 지위이다. 이러한 철학적 사상은 예술을 뒤덮어, 예술로 하여금 변증론에 근거하게끔 강요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발견할 수 있듯, 아폴론적 경향은 논리적 도식주의 안에 들어앉아 버렸고 디오니소스적 경향은 자연주의적으로 묘사된 격정과 뒤바뀌어버렸다. 변증론적인 연극에서는 비극적 연민을 상실할 위험이 크다. 왜냐하면 변증론에서는 논리적 결론이 도출될 때마다 도취되어 만족하고, 차가운 명석성과 차가운 의식 속에서만 작용하는 낙천주의적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천주의적 요소가 일단 비극 속에 침투하면 디오니소스적 영역을 점차 잠식하면서 비극을 필연적으로 ‘시민극으로의 투신 자살’이라는 자멸로 몰아넣는다. “덕은 지식이다. 죄는 오직 무지에서 비롯된다. 유덕한 자는 행복한 자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낙천주의적 근본형식이 비극의 죽음을 가져왔다. 유덕한 주인공은 변증가여야 하고, 덕과 지식, 신앙과 도덕 사이에는 필연적이고 명백한 연결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스킬로스의 해결책인 디오니소스적 정의는, 기계 장치 신을 사용하는 시적 정의, 즉 권선징악의 원리로 전락해 버렸다. 소크라테스적·낙천주의적 무대 세계는 합창단과 비극의 음악적·디오니소스적 토대를 우연적인 것으로, 비극의 기원에서 없어도 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합창단은 비극과 비극적인 것 일반의 원인으로 간주될 때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합창단의 역할 축소는 소포클레스에서부터 보이는 것으로, 이는 그로부터 일찍이 비극의 디오니소스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합창단에게 연극적 효과의 중요 부분을 맡기지 않고, 합창단의 영역을 거의 배우들과 동등한 자리 정도로 제한시켜버렸던 것이다. 이는 마치 합창단이 합창석에서 무대 위로 올려진 것처럼 보였고, 이러한 합창단의 위치 이동은 비극의 본질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자신의 극과 글을 통해 소포클레스가 주장하는 이러한 위치 이동이야말로 합창단이 ‘파괴’되기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그 뒤를 이어 에우리피데스, 다가톤과 신희극에서 합창단의 파멸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이렇게 낙천주의적 변증론은 삼단논법을 이용하여 비극에서 음악, 즉 디오니소스적 상태의 유일한 표현이자 형상화이자 음악의 가시적 상징화이며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표현하는 꿈의 세계로서 해석될 수 있는 비극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이다.이를 통해 소크라테스 이전에 반(反)디오니소스적 경향이 이미 작용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경향이 소크라테스 속에서 전례 없이 커진 것이다.


 소크라테스적 현상은 비극을 해체하는 부정적인 힘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소크라테스의 인생체험을 고려할 때 과연 소크라테스와 예술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단지 대립관계만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어렵다. ‘예술적 소크라테스’의 탄생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니체는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반복되는 꿈을 통해 ‘소크라테스여, 음악을 하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사색이 최고의 뮤즈라고 자신했으며, 신이 ‘비속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일컫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가끔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서 결여감·공백감·반쯤의 자책감 등을 갖곤 했으며, 이에 벗어나기 위해 감옥에서 음악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가 아폴론에게 바치는 노래를 짓고 이솝우화 두서너 개를 운문으로 바꾼 것도 이런 심정에서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꾼 꿈속에서의 말은 논리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유일한 증거이며, 예술에 대한 몰이해를 통해 신에게 죄를 지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아폴론적 통찰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논리가, 철학자)에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불합리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예술은 학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상관물이자 보완물이 아닌가?’



15장

  소크라테스는 이전까진 존재하지 않았던 “이론적 인간”의 유형으로써 이전까지의 그리스 문화에 대해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을 근거를 제공했다. 이론적 인간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며 염세주의의 실천적 윤리로부터 보호받는다. 그러나 예술가는 진리가 드러난 뒤에도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것에 매혹 되는 반면, 이론적 인간은 진리를 밝혀내는 과정 자체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그래야지만 일부의 진리밖에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하나의 망상이 탄생했다. 이 망상은 사유가 인과율을 근거로 존재를 인식, 수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학문의 본능이며, 이 본능이 학문을 그 한계로까지 몰고 가게 된 뒤에는 예술로 전환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은 본래 예술을 지향한다. 학문의 사명은 존재를 이해가능하고 정당한 것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 신화는 그 논거로써 필연적으로 사용되며, 결국 학문의 목적이기까지 하다. 학문을 통한 인식의 욕구가 만약 인식 대신 개인과 민족을 위한 이기적인 목표로 사용된다면 실천적 염세주의가 만연하고 삶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약화될 것이다. 이에 반해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 자의 원형으로써, 개념, 판단, 추리를 통해 참된 인식을 얻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형식의 명랑성이다.

 그러나 학문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논리학의 한계점을 마주할 때 “비극적 인식”이 생긴다. 이를 견디기 위해서 예술이 보호제와 치료제로서 필요하다. 소크라테스의 만족할 줄 모르는 낙천주의적 인식욕은 결국 비극적 체념과 예술에 대한 욕구로 전환된다. 이 인식욕은 예술, 특히 디오니소스적 비극예술에 적대적이다. 그래서 니체는 과연 이 인식욕의 예술에 대한 욕구로의 전환 과정이 과연 천재를 끊임없이 탄생시키고 예술을 더 강하게 할지 혹은 ‘현대’에 의해 찢겨질 것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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