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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Nov 25. 2020

012. 무위(無爲)의 즐거움

아침 기상의 어려움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엔 자도 자도 더 자고 싶더니 이제는 더 자고 싶어도 일찍 잠에서 깨어난다. 요즘은 효과적으로 잠드는 방법을 찾아내었는데 유튜브의 책 읽어 주는 채널을 골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책의 내용은 남아 있지 않지만 수면제 효과가 확실한 것 같다. 문제는 일어나는 시간이다. 너무 일찍 눈이 떠진다. 평균 수면시간이 5시간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전에는 좀 더 자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억지로 잠을 청하지는 않는다. 그냥 조용히 빠져나와 세수 한 판하고는 거실에 앉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는데 새벽 시간을 무언가를 하는 생산적인 시간이 아닌 편안한 휴식의 시간으로 누린다. 한때는 그 시간을 외국어 공부나 독서 등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인풋의 시간으로 만들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새벽의 고요함 속에 앉았거나 글이나 낙서를 끄적이는 아웃풋의 시간으로 누리고 있는데 마음은 더 평온하고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정해 둔 바 없으니 오히려 이런저런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겨나는 것 같아 좋다.

오늘은 아침 산행을 하면서 아침에 잘 일어나는 법은 일어나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어나면 출근을 해야 하고 학교를 가야 하는 뭔가 강요된 것이 정해져 있으면 오히려 잠자리에 더 머물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마음이면 스르르 눈이 떠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잘하려고 하면 잘하겠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역설이 아침 기상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유재석의 유 퀴즈라는 프로그램에 카이스트를 졸업한 스타터 업 대표가 출연한 것을 보았다. 돼지고기가 좋아 미 국무성 장학금도 반납하고 이제는 매출 200억을 올리는 돼지 관련 회사를 경영하는 젊은 대표였다. 다른 것 보다 그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다. 몇 년 후 뭘 하고 몇 년 후 뭘 한다는 식의 인생의 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당장에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하는 편이고 지금 하고 있는 게 무척 재미가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저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산을 가더라도 정상을 반드시 올라야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체력이 되는 만큼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사람도 있다. 누가 옳다 그르다 보다는 산을 가는 방식이 서로 다를 뿐이다.

퇴근길에 GOD의 “길”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가사 중에 사람마다 갈 길이 정해져 있는 건지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나는 이 길을 걸어가고 있네라는 부분이 있다. 그 스타트업의 대표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가도록 처음부터 운명 지어진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드러난 것은 그가 좋은 조건의 미국 유학을 반납하고 어쩌다 창업을 했으며 지금은 계속 이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도 이른 아침에 눈이 뜨였다. 일어난 마음은 가벼웠는데 새벽에 아무것도 안 해야지 하는 마음을 내니 더 편안한 아침이 되었던 것 같다. 오늘은 이런 목표를 세워본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 해야지. 그러다 무언가를 했다면 그것도 좋다. 별일 없이 보냈다면 하루의 목표가 달성된 것이고 무언가를 했다면 결과가 있어 좋은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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