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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Mar 01. 2021

108. 청년 가게를 다녀와서

최근 집 근처에 피자가게가 새로 생겼다. 이미 다른 피자집들이 즐비한데 새로 피자집 오픈 예정임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보며 의하기는 했다. 그 장소는 위치가 애매해서 그동안 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했던 장소였기에 이번에는 얼마나 가려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퇴근하니 아내와 아이들이 그 가게 피자를 먹고 있었다. 피자가 정말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해댔다. 그날은 배도 부르고 해서 먹지는 않았는데 주말 저녁 피자나 한 판 먹자 싶어 주문 전화를 했다. 그런데 피자 도후가 얼마 남지 않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만 판매한다기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아니, 그렇게 많이 찾는다고?’ 바람도 쐴 겸 매장을 방문하여 피자를 주문하기로 하고는 집을 나섰다. 좁은 매장 안에는 먼저 와서 기다리는 대기 고객도 보였다. 둘러보니 카운터의 젊은 여직원과 함께 세 명의 주방 청년들이 일하는 에너지 넘치는 가게였다. 주문을 하니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기에 주변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다시 찾아갔다. 거의 마감시간인 듯 모두가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저들에게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를 하나 주고 싶어 ‘아이들이 이 집 피자가 되게 맛있다고 하네요.’라고 하니 여직원은 금세 얼굴이 환해지며 “정말요!”라며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주변에 가끔 새로 오픈하는 청년 가게들이 보인다. 혼자서 하기보다는 이렇게 서넛이 모여 창업을 하는 것 같다. 달라진 것은 업의 형태가 다양해진 점이다. 예전에는 카페 같은 좀 조용한 업종이었다면 최근에는 정육점이나 농수산물처럼 청년들이 쉽게 시작할 것 같지 않은 업종들이 눈에 띈다. 청년의 사회진출 방식이 다양해진 것을 반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은 부모님 연배의 기존 자영업자들과 경쟁관계에 놓여 있고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대기업의 횡포에도 취약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나라의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겠다며 과감하게 뛰어든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타트업하면 기술집약적인 분야나 디자인 회사 같은 깔끔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게 다 드라마가 심어준 착각이다. 시장의 실제 스타트업들은 밀가루 먼지 속에 피자를 구워내고 생선과 정육을 손질하는 경우도 제법 보이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는 시작하는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자리는 그리 많지가 않다.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으니 익숙한 부모님 밑에서 취준생이라는 또 다른 백수의 이름으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는 없는 게 아니라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광고에서 자주 보여주는 깨끗한 일자리는 언제나 포화상태이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다고 재래시장에 앉아 천 원짜리 콩나물을 파는 것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세대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생선을 손질하거나 콩나물을 담아 주는 청년의 손이 귀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얘기를 하지만 엄연히 직업에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너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직업 편향성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장관이나 대법관으로 물러난 사람들을 왜 법무법인에서 모셔갈까. 영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대기업 월급쟁이 사장들이 퇴직하면 주로 가는 곳도 하청회사나 법무법인들이다. 역시 그 기업들의 영업에 쓰기 위함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호주에 사는 동생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민오는 한국인들은 과거 이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보통 빌딩 청소업체에 소속되어 새벽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던 사람이 청소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고 하니 인간은 공동체의 시선에서 자유로우면 일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 같다. 은행에 근무할 때 창구에 온 기름때 절은 점퍼를 입은 필리핀 사람을 응대한 일이 있다. 알고 보니 그는 필리핀 최고의 대학인 마닐라 대학 법학부를 나온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이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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