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였을까? 주말에 기온이 꽤 내려갔었다. 겨울의 날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봄인가 했는데 갑작스레 맞이한 추위는 몸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사람의 감각은 그리 믿을게 못되어서 내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착각이란 게 있고 들었다고 해도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아이들이 옛날 사진이 정리되어 있는 앨범을 들고 나왔다. 30년 정도 된 사진들이다. 사진 속에는 익숙한 나의 얼굴이 여러 포즈를 지으며 서 있었다. 한 장식 다시 보니 사진 찍을 당시의 장소나 일들이 희미하게 생각난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많이 젊은 모습들이다. 그 시절 내 모습에 탄성을 짓는 아이들이나 아내에 비해 이상하게도 나는 별 감흥이 안 생긴다. 당연히 저 사진 속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지녔던 가치관이나 생각들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많이 달라져 왔고, 내 몸을 이루던 뼈와 근육, 다른 세포들은 쉼 없이 교체되어 그때와 전혀 다른 몸을 구성하고 있다. 그 사진은 단지 당시의 내 모습을 담아 둔 것에 불과하지 실상은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한때 나라고 생각했었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육체도 그러하고 그 안의 생각이나 마음도 그러하다.
무엇을 두고 나라고 할 것인가는 불교의 큰 화두이다. 결국은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계속적인 신진대사로 바뀌어 가는 몸의 세포들이나 순간순간 달라지는 마음이나 생각에서 보듯이 내가 나라고 할 고정불변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런 속성이 없다. 그래서 무아(無我)이다. 무아를 드러내는 성질은 ‘무상’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무상(無常)이다. 나도 그러하다. 인간의 삶이 계속 변하여 가니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렸다. 단지 인연에 따라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져 간다. 사진 한 장에 너무 무거운 주제를 실었다.
아내와 거실에서 차를 마시다가 요즘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냉장고의 먹거리나 가진 물건들을 보니 이건 그냥 풍요로운 삶 그 자체이다. 옛날 왕들의 삶이 나보다 나았을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시하며 살고 있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과거의 산물들이다. 삶은 오직 지금이라는 시간에 머문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이 있긴 하지만 지금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다면 과거의 인연이 좋았던 인연이 되지만 지금 내가 불행하다 여기면 과거는 좋지 않은 인연들인 것이다. 지금이 좋다면 앞으로의 삶도 좋게 만들 씨앗을 뿌리는 것이지만 지금을 제대로 살지 않으면 미래의 삶이 갑자기 좋아질 수가 없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어렵고 힘들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지금이 미래의 좋은 결과를 짓기에 호시절이라 하면 헛소리로 들릴까. 98년 IMF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평가하기로는 대한민국이 내부의 부실을 털어내고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고도 한다. 돌아보면 30년의 시간들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갔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더 할 것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빨라진다고 한다. 오늘이 좋으면 어제도 좋았고 내일도 좋을 것이니 오늘만큼 중요한 시기가 있겠는가. 어려운 이 시기에 의미를 찾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