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길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성향은 아닌 것 같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 이것이 아니면 저것으로 내가 만나는 세상을 좀 유연하게 대하려는 마음이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를 접하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구절이 와 닿았다. 처음에는 어떤 한 길로 걸어가다가 길이 끝난 지점을 만났다면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 같았다.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전문 산악인들 사이에는 새로운 루트를 하나 개척하는 것을 대단한 성과로 여긴다고 한다. 이제 에베레스트 산도 단지 등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의미가 반감되고 어느 루트로 올랐는지를 더 중요한 성과로 본다고 한다. 길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절박감에 처해 있을 수도 있지만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은 마지막에 성과를 누릴 수 있지만 그 과정의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기도 한다.
그럼에도 길을 만드는 일은 의미가 있다. 세상에 처음부터 길이 있었을 리 없다. 누군가는 작은 길을 만들었을 테고 그 길을 여러 사람이 가는 가운데 좀 더 넓어지고 탄탄해져 모두가 가는 큰길이 되었을 것이다. 길을 처음 만드는 사람이 절박감에서 만들었건 도전적인 마음으로 만들었건 그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는 것은 누군가는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만들어진 길만을 가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길은 만들었지만 다른 사람이 걷지 않으면 길은 다시 없어지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근무했던 FC 영업부서의 직원을 만났다. 영업조직이 대거 떠나면서 사업규모가 많이 위축되었다고 한다. 지난 시간 열정을 가지고 진행했던 일들이라 마음이 좀 무거웠다. 나는 길을 하나 어렵사리 만들어 갔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길은 필요 없었나 보다. 지금도 가끔 회사를 이직한다며 작별을 고하는 FC분들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털어버리기로 한다. 그동안 나는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미생 오 과장의 독백처럼 단지 일이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