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훈련받을 때 야간 행군을 할 때가 있었다. 두터운 군화를 신고 밤을 이용해 꼬박 1주일을 산속으로 걸어 다녀야 했던 고된 과정이었다. 당시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군화 속에 굵은 모래 한 알이라도 들어갈라치면 걷는 내내 온 신경이 그 모래 한 알에 쏠리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분명 불편함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모래를 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는 군의 대오에서 이탈하면 따라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기에 10분간 휴식시간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유명한 어느 등반가에게도 등산화 속 모래 한 알은 성가신 존재였나 보다. 등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신발 속 이물질 제거라고 했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이 있다. 무언가가 내 곁에 머물다가 사라진 상황을 말한다. 배우자의 죽음이나 늘 다니던 직장의 은퇴 등 언제나 함께 할 것 같은 사람이나 환경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상황을 말한다. 이럴 때의 심리상태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다시 뭔가로 채워야 할 것 같아 이전보다 더 활동적인 모습도 보인다. 내가 아는 어느 선배님은 다정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두 분은 미대에서 선후배로 만나 결혼까지 이어진 케이스였다. 당시는 내가 20대였는데 나와 동기들은 선배의 초대로 신혼집을 방문해 저녁을 함께 하며 행복한 두 분의 모습을 부러운 듯 보았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 형수님이 암으로 돌아가신 거다. 우리는 그 선배님의 상실감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위로를 드렸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채 안되어 선배님의 재혼 소식을 접했다. 그때의 느낌은 너무 이르지 않나 였다. 우리를 맞이하던 돌아가신 형수의 수줍어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선배님에게 약간의 거리감마저 느껴졌었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상실감에 대한 심리적 상태를 듣게 되니 선배가 왜 그리 재혼을 빨리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분은 돌아가신 아내가 차지했던 비중이 너무 커서 그 빈 공간을 견딜 수 없었고 어떡하든 채워야 했던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불편함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지만 상실감은 빈자리를 채움으로써 해결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두 감정은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고 하는데 불편함은 최대한 빨리 조치해야 하지만 상실감은 너무 급히 채우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남자들이 은퇴라는 상실감이 있다면 주부들은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자녀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직, 결혼과 같은 이유로 독립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말한다. 이처럼 중년 이후에는 그동안 누려왔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실감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너무 빨리 무언가로 다시 채우기보다는 떠나간 것에 대한 감사와 의미를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 외에도 내가 다시 사랑할 것들이 많이 있으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찾아보는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