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기적인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이고 나를 제일 먼저 고려하려고 한다. 가족을 위해서 나는 참고 희생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을 위할 수 있는 힘도 생기고 내 가족의 행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나는 이기심을 좀 특이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정돈되지 않은 아이들의 방을 볼 때 짜증을 내면서 잔소리하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문을 닫아 버린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내 눈이 편하고 짜증을 안 내었으니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치워야겠다 싶으면 그냥 내 일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이건 아이들의 일인데 내가 대신 억지로 하고 있다고 여기면 화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정리는 하되 내 마음은 편해야 한다는 나의 이기심을 발휘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가능하면 그들의 인생에 개입을 않고자 한다.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어쩔 수 없더라는 것이다. 설령 가족이라 하더라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인데 하물며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내가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건 좋은데 나에게 피해를 끼칠 때는 명확히 거부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들과 다투거나 화를 드러내는 일은 가급적 피한다. 나는 싸움도 잘 못하고 흥분하면 말이 제대로 안 나오기 때문에 말다툼도 어렵다. 그때는 조용히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그 사람과 엮이지 않는 것을 택한다. 아니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힘을 빌리는 편이다. 이것이 나의 이기심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살면서 사람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갈등으로 인해 내가 괴로운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 늦게 입문한 불교였지만 좀 현명하게 살아가는 큰 가르침을 하나 얻었는데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일어난 상황과 나를 분리한다는 가르침이다. 아이들이 정리를 안 한 것과 그것을 보고 내가 화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이 방법을 내 주변 상황에 적용해 보니 상황을 보는 내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물론 연습이 좀 필요하다. ‘어, 화가 올라오네. 내가 왜 저 인간 때문에 화가 나는 거지. 이러면 나만 손해지’라고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선택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벌어진 상황과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눈만 뜨면 갖가지 상황들이 펼쳐지는 하루가 시작된다. 그 모든 상황에 이리저리 내 마음이 요동치다 보면 괴로운 하루가 되고 만다. 주변의 상황 때문에 내가 괴로움을 받지 않는 수준까지가 나의 지향점이다. 보통의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수준이라 여겨지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겠거니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