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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슬기로운 백수생활

by 장용범

오래전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분은 직장생활을 승승장구하여 임원으로 마감하셨는데 식사 한 번 하자 시기에 날짜를 잡았다. 내가 아는 그분은 늘 상대에게 맞추는 타입이었다. 저 정도로 하면 자신의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았는데 용케도 잘 해내시는 분이었다. 당신의 말을 빌면 대리 과장 때는 일이 우선이지만 그 이상 올라가면 관계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신 분이었다. 그 때문에 직장 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그분의 인간관계는 그 깍듯함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곤 했다. 괜한 나의 어깃장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그분에 대한 호칭은 팀장님이다. 최종 직함인 임원급 직함으로 부르는 게 어색하기 때문인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다. 그랬던 그분도 지금은 백수 생활중이시다.


모든 사람의 삶은 결국 백수로 돌아가고 만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사람들이나 아직 취업을 못한 청년이나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백수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백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백수가 되고 싶어 백수가 된 적극적 백수와 원치 않았는데 백수가 된 소극적 백수이다. 그런데 백수생활도 이왕 하려면 좀 슬기롭게 하는 게 좋겠다. 남에게 대우받고 인정받겠다는 마음보다는 지금 내 생활의 장점에 눈을 돌리는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 거지 부자가 홍수로 마을이 떠 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 우리는 가진 게 없어 걱정할 게 없네요’라고 하자 그 아버지는 ‘그게 다 아비 덕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세상일은 긍정과 부정이 늘 함께 하는 법이다. 내가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백수생활도 그러하다.


대단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해 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대단해지려고 할 때 생기는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대단하다는 인정을 받고자 할 때나 정작 그 정도의 역량이 없음에도 남들의 눈에 나를 맞추려고 할 때 스스로를 괴롭히는 연출이 나오게 된다. 인정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좀 더 많은 보상이 돌아올 수 있고 더 좋은 것을 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백수에게 대우받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남아 있다면 괴로운 백수가 되고 만다. 이왕 백수생활을 할 것 같으면 행복하고 적극적인 백수가 낫지 않을까. 직장생활에서 항상 관계를 중시하시던 나의 팀장님이 지금쯤 행복하고 적극적인 백수생활을 하고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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