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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당신의 이야기는?

by 장용범

‘당신은 어떤 사람 입니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치자. 그것이 취업을 결정하는 면접장이거나 처음 만난 남녀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거나 사람들은 상대를 알고 싶다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신입사원들의 서류전형 심사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두터운파일에서 30% 정도만 추려내는 작업이었다. 요즘은 선입견을 배제한다는 차원에서 블라인드 전형을 하여 사진이나 학점, 학교 등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전형 통과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대한민국의 20대 중반 청년들이 자기소개서에 적을 수 있는 이야기는 정말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입학해서 학업과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하다 무엇을 느꼈다 정도이지 더 이상 특별한 것을 바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당시 가장 눈에 띄었던 자기소개서가 있었는데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어느 여성 지원자가 국내에 와서는 외국계 보험회사의 설계사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영업성과는 좋았지만 이제부터 보험회사의 내부 업무도 알고 싶다는 것이 지원동기였다. 그녀에게는 일관된 이야기가 있었다. 결국 최종 합격까지 하고 나중에는 같은 부서에 배치되어 근무도 함께 하는 인연이 되었다. 일을 똑 부러지게 잘했던 직원이었지만 아쉬운 것은 결혼을 일찍 해 최근에는 세 번째 아이까지 낳다 보니 일하는 기간이나 출산휴직 기간이나 비슷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가정을 무엇보다 우선시하여 연이은 휴직에 따른 경력 공백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꼰대 세대라 그런지 일이 먼저라는 생각도 없지 않은데 새로운 세대의 변화된 가치관을 접하면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게 과연 일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다는 것은 스펙을 쌓는 일과는 많이 다른 일이다. 스펙과 스토리는 차이점이 있는데 스펙이 쌓는 것이라면 스토리는 만드는 것이다. 스펙은 토익점수나 자격증 등을 시험을 통해 가져오는 것이지만 스토리는 자신이 기획자가 되어 일관된 서사를 편집하고 구성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스펙에는 감동이 없지만 스토리에는 감동이 있고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로 개인들이 많이 어려워진 시대이다. 사회가 이처럼 단시일 내에 바뀐 경우는 전쟁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만들어진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적응하는 사람보다는 나의 스토리를 어떡하든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것 같다. 큰 파도가 밀려올 때는 파도를 타야 한다. 안 그러면 파도 속으로 처박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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