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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Apr 22. 2021

160. 안 놀아 봤잖아

예전에 그만둔 지점장이 인사차 들르겠다고 연락이 왔다. 잊지 않고 찾아주니 반가울 뿐이다. 그에 대한 기억은 성실하고 열심히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그만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은 어느 법인 대리점에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며 명함을 건넨다. 당시 아이가 많이 어렸었는데 벌써 5학년이라는  그간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밝은 그의 모습에 무엇보다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진심이었다. 보험회사의 영업은  부침이 많은 직종이다. 지점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업가형이다 보니 영업조직의 성과가 나지 않으면 본인의 급여 맞추기도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신 성과만 좋으면 월급쟁이들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가져간다. 대화 중에 현재가 안정적이긴 하나 성장의 한계가 보인다며 하반기쯤 본인의 비즈니스를  계획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안정을 찾고 어떤 이는 안정이 따분하다며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는다. 정답은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20-30대 직장인 사이에 파이어 족이 화제가 되는가 보다. 바짝 벌어 40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 소속된 민원 조사반은 은퇴자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일을 하는 조직이다. 하루는 정규직인 그곳 파트장이 지금 소득의 2/3 정도만 나오는 구조라면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싶다고 하니 선배님들이 한 마디씩 거드신다. ‘안 놀아 봤잖아’. 골프장이나 산에 가는 것도 가끔 한 번씩 가야 재미있지 허구한 날 가는 거라면 재미도 없더라는 얘기를 하신다. 경험자들의 말씀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소득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일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면도 있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마냥 노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우리 사회의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경로당이나 요양원의 노인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 지향점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역시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하는 존재인가 보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없었다. 현재의 직장도 그러하다. 어쩌다 이 직장에 들어왔고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지금껏 일을 하게 되었다. 입사했다는 것은 언젠가는 퇴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시기가 개인마다 다를 뿐이다. 하지만 퇴직했다가 재입사한 선배들을 보니 은퇴 후 노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아니었나 보다. 류시화의 시중 <길 위에서의 생각> 한 구절이 묘하게 겹친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중략>..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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