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불교 경전반을 함께 다닌 도반을 만났다. 그분은 비슷한 연배로 무척 밝은 성품을 지닌 분인데 최근 은퇴하신 분이었다. 함께 산행을 마치고 식사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데 수십 년 동안 해왔던 잘하는 일과 최근 좋아하게 된 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코로나 시국이라 잘하는 일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우울한 반면 연천 시골집에서 개를 키우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하셨다. 휴대폰의 사진을 보니 꽤 많은 개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표정이 다소 어두웠지만 개에 대한 이야기에는 생기가 확 피어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 은퇴도 하셨으니 좋아하는 개와 관련된 일도 찾아보시면 어떠냐고 했다. 다녔던 회사의 일감을 받아하는 일에서 성과가 나면 좋겠지만 그 회사도 매년 은퇴자들이 누적적으로 나올 테니 새로운 은퇴자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 같아 드린 말씀이었다.
은퇴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돈 문제가 어쩔 수 없는 걸림돌이 된다. 현역 시절보다는 못한 수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은 과거와 달리 회사를 그만두고도 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개인을 둘러싼 환경들이 초연결 시대로 접어들면서 나의 콘텐츠나 아이템이 전 세계로 얼마든지 퍼질 수 있는 여건도 갖추어져 있고 그것이 소득으로 이어지는 시대이다.
나는 50+ 센터에서 주관한 ‘무료출판’ 관련 강의를 수강했는데 60대의 여성 강사분이 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은퇴란 ‘직’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업’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은퇴 후에 종사할 ‘업’은 이왕이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소득에 대한 관점도 현역 시절보다 줄어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사회에 처음 나왔다고 보고 점진적으로 상승시켜 최종에는 지금과 같은 수준을 목표로 세워보면 어떨까. 단, 돈에 대한 관점은 좀 달리 가져야 한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 활동에 대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같아 보이지만 좀 다른 점이 있다. 은퇴 후에도 돈을 목적으로 살면 그 삶이 참 팍팍하겠지만 내 활동의 결과를 게임의 점수로 보상받는 것처럼 돈으로 받는다고 여기면 일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돈보다 일을 먼저 보는 관점이다.
나는 그 분야를 콘텐츠 영역에서 찾아본다. 공장을 짓거나 가게를 열어 은퇴 후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좀 무모해 보인다. 그렇다면 취업인데 은퇴시점의 중년에게 본인이 잘하고, 하고 싶은 일에서 취업의 기회가 열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을 해보면 어떨까. 어떤 분야를 내가 처음으로 시작해 보는 것이다. 창직하기 가장 좋은 나이가 은퇴 후 시기인 것 같다. 경험도 있고 지식도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 교통, 통신, 물류 등 기본 인프라가 너무도 잘 되어 있는 지금의 시대에는 은퇴자라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은 시대이다.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가 없다.
은퇴 후에는 돈 때문에 억지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돈도 생기네라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돈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정운 교수가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주제로 강의를 했더니 청중 가운데 팔자 좋은 소리 한다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럼 지금처럼 그렇게 사세요’라고 했다 한다. 문제는 그렇게 살기 싫다는 데 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과는 다른 프레임을 세워야 한다. 같은 사고나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자나 하는 짓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