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8. 바다가 좋은 마음

by 장용범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와 가없는 한 줄의 수평선, 그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까지. 고향이라 부산이라 그런지 바다에 대한 그리움에 일 년에 몇 번은 바다를 눈에 담고 와야 한다. 무슨 인연이지 군생활도 동해 바닷가를 낀 해안부대에서 했었다. 야간에 순찰을 도는 바다는 늘 끼만 바다였고 변화 없는 바닷가 생활에 답답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바다를 매일 보는 것이 조금도 물리지 않았다. 그런 내가 바다 없는 도시에서 십 년이 넘게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 업무는 출장이라도 잦아 가끔은 바다를 볼 기회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출근하면 퇴근 시까지 책상에 종일 앉아 있는 일이라 바다를 보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욕먹을 짓이지만 20대 때에는 태풍이 온다고 하면 일부러 바다를 찾은 적도 있다. 평상시의 바다와는 달리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노라면 바다의 커다란 힘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갯벌이 있는 서해 바다를 좋아한다고 했다. 밀물과 썰물로 바다에 늘 변화가 있고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여 조개나 바지락을 비롯한 여러 바다 생물을 채집도 하니 삶의 터전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동해와 서해 바다를 여인에 비교하며 동해 바다는 미인과도 같아서 보기에는 좋지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지만 서해바다는 늘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어 좋다고 했었다. 그렇게 보면 동해 바다는 보는 바다이고 서해 바다는 체험하는 바다이겠다. 그럼에도 나는 동해 바다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비록 갯벌도 없고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는 구간도 한정되어 있지만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탁 트인 그 풍광이 좋아서다.


사람이 바다라면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갯벌과 얕은 수심으로 다양한 해안가 모양새를 갖춘 서해 바다처럼 친근한 모습도 좋다. 아니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세계가 확고히 선 것 같은 수심이 깊고 푸른 동해 바다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이왕이면 둘 다의 모습을 갖추는 게 좋겠다. 사람을 대할 때는 서해 바다처럼 친근하게 다가서고 홀로 스스로를 마주할 때는 깊고 단정한 동해 바다 같은 사람이면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모습일까.


나는 바다가 좋다. 하지만 바다는 한 번도 나를 좋아한다고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나는 바다가 좋다. 이처럼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냥 내가 좋은 것이다. 누군가 바다가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이 한 마디면 족하다. “그냥”. 그냥 좋은 것이 정말 좋은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를 그냥 좋아한다면 내가 좋은 것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다를 보듯 그 사람을 보면 내가 그냥 좋으면 된 것이다. 그가 비록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않더라도 그러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