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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느슨한 만남이 좋다

by 장용범

퇴직을 하게 되면 많은 관계들이 일시에 끊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이라는 밥벌이 장소는 조직의 목적을 위해 개인이 소멸되는 대부분이 시절 인연들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가끔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휘리릭 넘기다 보면 직장에서의 관계가 참 허망함을 느끼곤 한다. 내 폰에는 오랜 기간 몸 담았던 업무의 특성상 정말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한 때는 일부러 집 앞에까지 찾아가서 소주 한 잔 하던 인연들도 있었고 아이들이 어릴 적엔 가족 모임을 함께 하던 인연들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많은 전화번호 가운데 지금껏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이는 정말 드물다. 이동 발령만 나더라도 예전 근무하던 곳이 낯설다는 느낌을 받는데 퇴직이라도 하게 되면 오죽할까 싶다.


며칠 상간에 직장 외부의 인연들과 약속이 연이어 잡혔다. 한 번은 50+센터 PTC 교육에서 알게 된 인연이었고, 다른 한 번은 글쓰기를 실천하는 회원들과의 번개 모임이었다. 같은 관심사를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만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자 먼 거리에서도 찾아오신 그 마음들이 고마웠다.


지난 주말의 만남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다. 오래가는 만남은 느슨한 테두리 안에서 개인들이 소통하는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처럼 강한 테두리 안에서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맞추어야 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의 사람들과는 단절되기가 쉽다. 심리적 테두리가 너무 강해 다시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테두리가 아예 없는 것은 개인끼리 맺어가는 만남으로 한정되게 마련이다. 여행으로 치면 회사의 인연들은 단체 패키지여행에 해당한다. 개개인의 사정보다 단체의 일정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만들어 가는 인연들은 혼자 가는 배낭여행과 같다. 그런데 동호회 같은 다소 느슨한 테두리의 모임들은 호텔과 항공권만 정해진 단체 자유배낭여행과 같다. 개인의 독자성은 존중하면서 한데 어울리기도 하는 그런 만남이기 때문이다. 은퇴가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느슨한 테두리의 인연들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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