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시작으로 세찬 비가 때로는 가는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휴일이었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캬라반 캠핑을 떠난 딸아이가 염려되었는데 별 문제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 오는 날의 가라앉는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주인 없는 딸아이의 방에서 빗소리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호사는 맘껏 누릴 수 있었다. 더구나 주문했던 책 세 권이 도착해서 더욱 풍요로웠던 주말이었다.
자주 들르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고객 등급이 떨어져 혜택이 줄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후로 발길을 끊었던 이유가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여전한 현 시국에 사람 많은 매장에 자주 가는 것도 꺼림칙해서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근래 책을 잘 보지 않는 나를 본다. 유튜브의 매력적인 영상들은 습관적으로 내 눈을 사로잡았고 그렇게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험을 자주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독서에 비해 너무도 손쉬운 활동이고 유튜브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편집 기술에 점점 홀려 드는 느낌도 든다. 어느덧 내 생각이 점점 종속되어 간다는 마음도 없지 않다. 이제 공중파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고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의 개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공영 미디어에 비해 개인 방송들은 검증기능이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자극적이지만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어지러운 영역이 유튜브 같은 개인 미디어 영역이다. 언론의 자유와 진실의 영역이 대립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정보나 지식을 얻는 법도 달라져야 하는가 싶지만 그런 것도 아닌 것이 텍스트는 여전히 모든 콘텐츠의 기본이 되고 있다. 영화나 영상을 하나 찍으려 해도 시나리오나 콘티를 짜야하고 중요 발표를 할 때도 발표자는 역시 텍스트로 이루어진 원고를 읽고 있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은 거의 제로 수준이지만 문해력도 낮은 수준에 머문다는 발표가 있었다. 문해력은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 말은 눈앞의 글자는 읽어 가지만 문장이나 단락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게 좀 이상하다. 문맹률이 낮으면 당연히 문해력은 높아야 하는데 둘 다 낮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원인은 텍스트를 읽는 시간보다 스마트폰의 영상에 빠져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있다고 한다. 초고속 통신환경은 재미난 동영상을 항상 제공해주고 있어 책보다는 영상에 눈이 더 머물고 만다. 인터넷 강국의 예기치 못한 역기능 같다.
조용해 보이지만 독서는 생각보다 피로한 활동이다. 텍스트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에서 사색과 끄적임도 하는 등 적극적인 사고 활동이 독서라는 활동이다. 하지만 유튜브 영상을 볼 때는 내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냥 플레이해두고 보기만 하면 된다. 편집자의 의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생각은 편집자의 생각과 유사하게 닮아 있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사고의 좀비가 아니고 무엇일까. 너무 많은 콘텐츠는 오히려 선택을 더 어렵게 한다. 사실 콘텐츠는 요리로 치면 재료에 불과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사고의 확장이 될 터인데 유튜브 영상이라는 콘텐츠는 그냥 완성된 배달 음식 하나 시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반면 독서는 직접 하는 요리처럼 여간 번거롭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리한 유튜브에 자꾸 손이 가는 것 같다. 이처럼 시대는 독서 하기에 무척 어려운 환경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다시 책이라는 결론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주입된 생각 말고 적어도 내 생각 하나쯤은 가지고 싶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