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답은 사지선다 밖에 있다

by 장용범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의 상태를 보기 위해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환자를 물이 가득 찬 욕조 앞으로 데려가 티스푼과 찻잔, 양동이를 주고는 욕조를 비우라고 했다. 그렇다면 티스푼이나 찻잔을 사용한 사람은 환자 양동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정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욕조의 마개를 뽑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양동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지를 부여받으면 사고의 회로가 그 안에 갇혀 버린다. 사정이 이렇다면 사지선다의 시험문제는 사고의 경직성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에게는 연령대별로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대학, 직장, 결혼, 자동차, 내 집 마련, 승진, 노후준비 등등. 그런데 그런 선택지가 예전에는 참 보편적이었는데 이제는 점점 예외적인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사지선다 안에 답이 없는데 그 안에서 답을 구하라고 하면 문제 푸는 입장에선 참 곤혹스럽다. 지금은 개인의 라이프 사이클에 있어 주어진 사지선다의 지문을 외면하고 의연하게 욕조의 마개를 뽑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일지도 모른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 노인으로 살아야 할 기간이 늘어났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젊은 시절이 더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다. 피터 래슬릿은 “인생의 새 지도”라는 책에서 인생을 총 4개의 나이대로 구분했다.


* 제1의 나이: 출생 후 대략 30세까지로 의존적이고 미성숙하며 사회화와 교육을 마치는 시기이다.

* 제2의 나이: 책임감을 갖고 독립적으로 가정과 직장 등 삶을 꾸리기 시작해 소득과 소비의 과정을 경험하는 시기다.

* 제3의 나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누리고 정체성을 확보하며 개인적인 성취를 거두는 단계다.

* 제4의 나이: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이 임박하는 단계로 생이 다할 때까지다.


우리에겐 제1,2,4의 나이는 익숙하지만 제3의 나이는 조금 생소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제3의 나이를 건너뛰고 바로 제4의 나이로 넘어가기도 한다. 저 기준에 의하면 나에게 적용될 제3의 나이는 50대부터인 것 같다. 이제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직장은 은퇴시기가 다가온다. 지난 제2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사회적 성적표는 어느 정도 주어졌는데 스스로 보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 인생의 황금기는 제3의 나이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을 마치고 개인화된 자신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의 사회적 성취나 화폐의 증식은 하기도 힘들고 의미도 줄어드는 시기이다.


자, 이제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누리고 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성취를 누릴 시기이다. 그런데 이야말로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로 태어난 한 인간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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