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의 휴가를 가졌다. 그냥 좀 쉬고 싶어서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반바지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평소 내가 내리는 정류소를 일부러 지나쳐 내려 보았다. 목적지가 뚜렷한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나의 걸음걸이는 느릿느릿 여유를 부린다. 이런 게 자유지 특별한 게 있으려나. 갓 구운 빵 냄새에 이끌려 어느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서울 도심 속에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에 완공이 된 건물이었다. 깔끔한 실내가 마음에 든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두고 출근길 사람들을 구경한다. 도시의 일상적인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일반 직장인들이 주중에는 할 수 없는 다른 재밋거리를 찾다가 오전에 영화관 가기를 떠올렸다. 마침 근처에 독립영화관이 있어 티켓을 구입하러 가 보았다. 주중 오전에 영화관 오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했는데 역시나 없다. 매표소의 직원이 딴짓을 하다가 표를 달라는 내 소리에 흠칫 놀란다. 영화를 하나 고른다. “트립 투 그리스”라는 두 남자가 터키에서 출발해 그리스 일대를 돌아다니는 기행문 같은 영화였다. 객석에 들어서니 한 남자가 앉아있다. 둘이서 보려나 했는데 영화가 시작할 즈음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나 오전 영화를 보러 온 건지 왁자지껄 하더니 영화가 시작되자 이내 조용해진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조금 일찍 나왔다. 시간차를 두고 나오니 역시 조용한 가운데 영화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합쳐 시공간이라 한다.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은 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한 사람의 존재가 그를 둘러싼 유일한 시공간 속에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 시간에 다른 곳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끔 이 시간과 공간을 약간 비틀어 볼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효과를 느낄 수는 있다. 남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여행 외에 나는 시간여행을 가끔 하는 셈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시간과 공간을 엇갈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주중에 출근하는 회사를 주말에 가 본다. 같은 공간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전화소리에 직원들이 바삐 왔다 갔다 하던 사무실엔 그저 조용한 적막감이 느껴질 뿐이다. 자리에 앉아 그런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다. 주중에는 하지 못할 호사도 누리는데 음악을 스피커로 들으며 느긋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는 같은 공간을 시간대를 달리해 느껴보는 시간여행 방식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다른 공간을 느껴보는 방법도 있다. 대부분의 여행이 이 범주에 속하지만 나는 좀 색다른 시간여행을 제안한다. 멀리 떠날 것도 없다. 이번처럼 하루 휴가를 내고는 평상시처럼 출근시간대에 집을 나온다. 다만 회사로 바로 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 자리 잡아 출근하는 직장동료들을 구경한다. 오전 근무가 시작될 즈음 남들 회사에 있을 때 근처 영화관이나 미술관에 가기도 하는데 이게 은근히 재미를 준다.
대서를 지나며 무더위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여름에는 산이며 바다를 찾아 멀리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지금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는 내가 있는 곳에서 시간과 공간을 엇갈리게 배치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전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예전에 타임머신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 타임머신에 올라 작동을 하니 기계는 그 자리에 가만있는데 주위 배경이 시간을 거슬러 옛날로 가기도 하고 미래로 가기도 했다. 그게 왜 인상적이었냐면 시간여행은 공간을 이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큰돈 들일 것도 없이 떠나는 나의 시간여행 방식이다. 한 마디로 익숙한 내 주변을 ‘같은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서 누리는 방법이다. 나는 남들이 잘 모르는 시간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