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정토회에서 얻은 이 말은 아침에 뒷산 봉수대를 오를 때마다 정상에서 다짐하는 선언이 되었다. 그러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은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의 일반적인 주인공은 가장 많은 대사를 하고 있고, 더 많이 화면에 노출되며 극의 스토리를 주도해 간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배경 역할을 하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는 늘 주인공이 받는다. 드라마 허준에서 “줄을 서시오!”라고 하던 탤런트 임현식은 정말 평범한 모습의 이웃집 아저씨 같다. 그의 외모로 보아서는 평생 주인공을 못 할 것 같고, 내 기억에도 그가 주인공이었다는 드라마나 영화가 없는 걸로 보면 평생을 조연으로 연기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잘 생긴 탤런트 이정길과 동기라고 하는데 스스로 보기에도 이정길이 주인공이면 자신은 조연으로 주인공을 빛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았고 그게 편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을 그리 내니 오히려 캐스팅도 잘 되고 많은 작품에 출연이 가능했다고 한다. 탤런트 전원주도 그러하다. 작은 키에 늘 수다스러운 아줌마 역할을 하는 조연 전문 배우였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다 보니 이런 조연들이 주목을 받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면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의 청소년기에는 트로이카라 하여 주인공 역할이 고정된 세 명의 여배우가 있었다.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다. 당시 그녀들이 나오는 영화를 허접한 2본 동시 상영관에서 가슴 설레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그녀들을 방송에서 볼 일은 드물지만 당시 조연 역할을 했던 전원주, 김수미 같은 인물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개성을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극 중에서만 조연이었지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는 당당한 주연이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허태균은 한국인들은 주체성과 주인공 의식이 유독 강하다고 했다. 이 에너지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역으로 이것 때문에 행복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한 때 부자라고 하면 이병철만 떠올렸지 미국의 누구라는 것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를 떠올리는 시대이다. 대통령 박정희라는 이름이 이 나라의 군주같이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수시로 대통령을 까버리기도 하는 시대이다. 어느 일본인 교수는 한국인에게 ‘한 턱 쏜다’는 말은 밥값을 내겠다는 말이 아니라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되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문제는 시대가 달라져 비교의 대상이 확대되면서 개인이 주인공이 될 경우가 드물어졌다는 데 있다. 이제 개구리가 우물 안을 벗어났음에도 심리 저변에는 우물 안에서 처럼 늘 주인공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에 허태균 교수는 우리가 이 시대에 맞게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자신을 인정하자’는 것과 ‘인정해 줄 사람을 찾자’는 것이다. 어디 가서 ‘내가 누군지 알아?’만큼 졸렬한 물음도 없다. 제발 나를 인정해 달라는 애원으로 보이기도 하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으니 내가 나를 인정하며 살고 그 삶을 인정해 주는 사람 한 둘이라도 있으면 좋은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법은 이처럼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음, 그 정도면 괜찮게 살았어. 아주 좋아!” 이 마음을 내는 게 이 시대에 각자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